젊은이들 전쟁놀이 즐긴다|최철주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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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에서 전쟁이 패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알루미늄판으로 만든 군번표를 달거나 군복차림을 한 젊은이들이 드문드문 거리를 활보한다. 군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각국 육·해·공군 유니폼을 파는 가게가 동경의 우에노 (상야)와 시부야 (삽곡) 에서 성업중이다.
그뿐만아니라 전쟁을 소재로 하는 단행본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전쟁·용병·병기관계의 전문잡지들이 창간되고 서점의 한쪽 코너를 차지하게끔 됐다.
일부 여행사는 미국에서 전쟁 경험담을 발표하는 총회에 관광객 단체여행을 알선하는데 분주하다.
7일 일본NHK는 『전쟁에 끌리는 젊은이들』이라는 특집방송에서 매주 토요일이면 공무원등을 포함한 20∼30대의 젊은이들이 동경교외에 있는 지바(천섭)현 노타 (야전)시의 울창한 숲속에서 공기총을 쓰며 전쟁놀음을 하는 「주말범사들」 의 충격걱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프로에서 진짜 군복에 헬멧·모의수류탄·단도를 착용하고 M-16소총과 거의 똑같은 연발공기총을 쏘며 밀림지대의 가상 적을 소탕하는 전쟁놀이의 모습은 게릴라의 실전을 연상케할 정도다.
동경근교에서 소방서원·우편국직원·자위대원들과 편을 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대졸의 한 청년는 매년 캄푸체아나 라오스의 게릴라전에 참여하는 경력을 자랑했다.
최근 일본의 청년 몇명이 니카라과의 반정부군에 가담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의 분쟁지역에도 또다른 일본인이 참전하고 있음도 밝혀졌다. 5년전 일본청년이 프랑스 외인부대에 고용됐다는 뉴스보다 더 쇼킹한 것이었다.
동남아게릴라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한 청년는 TV인터뷰에서 『내가 왜 일본에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놀면서 전쟁하는 것이좋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전쟁을 하고있지 않은가. 일본도 전쟁을 해야한다』고 열변을 토해 사회자를 당황케했다.
집과 회사와 나라가 너무 평안해서 전쟁터에 나가 혈기를 발산하고자하는 사람과, 세계평화라는 거창한 명분을 걸고 분쟁지역의 특공대로 뛰어든 걺은이들은 고도경제성장이 끝나면서 더이상 움직일 수 없는 무대장치처럼 느껴지는 일본사회를 박차고 나선「이유없는 반항」의 몇개 집단중 일부다.
전후 일본의 젊은이들은 아프레게르(전후파) 를 비롯해서 맘보족이나 태양족·포주족 그리고 3무주의(무기력·무관심·무책임), 혹은「피터팬 인간」등 그들의 성격구조를 설명하는 대명사로 바꿔 불리워 졌다.
동경에 있는 「생명의 전화」는 2O대의 활용도가 매우 높다.
이야기할 상대도 없고 삶의 의욕도 없다는 호소가 태반이다. 가슴답답할 정도로 무기력한 일부젊은이들이 포식사회를 벗어나 전쟁터를 그리워하는 병정놀이에 열중함으로써 청소년교육의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전쟁의 패션화가 일본사회의 중심부로 퍼져나가고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군국시대의 피해자 입장에서 볼 때 걱정스러운 증상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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