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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험한 길|필리핀과 아르헨티나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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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의 안팎 사정은 민주화 도상에 있는 우리가 치러야할 민주화의 댓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더욱 실감케 한다.
이미 우리는 노사분규에서 그것을 느꼈다. 그러나 우리보다 앞서 민주화 장정에 나선 아르헨티나와 필리핀의 정정은 민주화를 결코 쉽게 낙관해선 안된다는 경고를 우리에게 보내오고 있다.
양국에선 최근 내각 총사퇴가 있었다. 필리핀은 쿠데타사건후 국가기강의 쇄신을 요구하는 군부의 압력으로, 아르헨티나는 중간선거에서의 여당 패배의 인책으로 각료 전원이 일괄 사퇴서를 냈다.
이 모두가 진보적 개혁세력에 대한 우익 보수세력의 압력에 따른 것이다. 정부에 대한 불만은 일반 국민과 보수파 양쪽에서 나왔다. 우익 보수진영의 불만은 개혁의 급진화와 좌익에 대한 관용, 국민들의 불만은 경제정책의 비능률과 부정부패등에 기인하고 있다.
필리핀의 「아키노」, 아르헨티나의 「알폰신」대통령은 모두 합법적 절차와 국민적 지지를 토대로 집권한 민주적 인물들이다. 따라서 정통성의 합법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정치의 정통성은 합법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책의 효율성을 수반하여 유효한 결실을 창출해야 한다. 「아키노」나 「알폰신」은 모두 이같은 효율성, 효과성의 부족으로 국민적 지지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두 나라 사태에서 배워야할 것은 민주화와 개혁과 안정을 잃으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필리핀과 아르헨티나에선 민정회복이후 생활수준의 향상을 요구하는 대중시위가 오랫동안 계속돼 왔다.
더구나 「아키노」와 「알폰신」모두가 민주화를 강조한 나머지 좌익세력과 민주세력을 구별치 않은 것이 지지를 잃은 중요 원인이 됐다.
필리핀 군부는 「아키노」의 대공협상과 관용에 불만을 터뜨렸고,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은 「알폰신」이 좌익 게릴라의 활동을 방관하면서 군부에 대해 지나치게 견제하는데 대해 비판했다.
세부적인 내용은 어떻든 두나라가 오랜 극우 권위주의 독재의 나쁜 유산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비슷한 과정을 겪으면서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61년과 80년의 경험이 그것이다. 우리는 다시 민주화 도상에 올라 있다. 과거의 실패가 반복돼서는 안된다.
정치는 다양한 이질성을 균형있게 통합시켜 조화를 이뤄나가는 과정이다. 어느 사회나 이익과 의견을 달리하는 계층과 그룹이 있고 그들 사이엔 갈등과 충돌이 있을수 있다.
우리 정치인들은 눈앞의 집권에만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정권교체후에 닥쳐올 어려운 상황을 현명하게 헤쳐 나갈수 있는 대책을 미리 예비해두어야 한다. 민주화의 댓가는 비싸지만 그것을 못치러 파산할수는 없다. 지금이야 말로 사욕과 당리를 초월한 지도층의 애국적 헌신이 요구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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