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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 손도장 밑 ‘STOP! 테러’ … 황당한 경찰 홍보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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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해 10월 말 인천 부평역의 한 지하상가 입구 게시판에 A4용지 크기의 포스터가 붙었다. ‘테러~!! 여러분의 관심으로 예방할 수 있습니다’ ‘안전한 부평 테러 예방을 위한 관심이 그 첫걸음입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홍보물이었다.

지난해 10월 중순 인천 부평지하상가 입구에 붙어 있던 부평경찰서가 만든 테러 예방 포스터. [뉴시스]

지난해 10월 중순 인천 부평지하상가 입구에 붙어 있던 부평경찰서가 만든 테러 예방 포스터. [뉴시스]

문제는 포스터 속 첫 번째 사진이다. 네 번째 손가락이 잘려 짧아진 손도장 사진이 실렸다. 중국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일제의 초대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다. 그 밑에는 ‘STOP! 테러’라는 글귀가 붙었다.

인천 부평경찰서가 만든 포스터
지하차도에 3개월 넘게 게시

SNS서 거센 비난 일자 떼내 폐기
경찰 “멈춤 의미로 손바닥 쓴 것”

한 네티즌은 지난 10일 자신의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이 사진과 함께 “테러 예방 포스터에 이걸(안 의사 손바닥 사진) 넣는 게 적절한 것이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일본의 극우단체처럼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지칭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이를 계기로 인천의 한 경찰서가 자체 제작한 테러 예방 포스터가 논란에 휩싸였다.

이 포스터는 인천 부평경찰서가 지난해 10월 중순 만든 것이다. 시민들에게 테러 경각심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아이디어를 낸 직원이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등을 이용해 제작했다고 한다. 모두 20장을 만들어 이 중 5장을 부평역 지하상가운영회 측에 전달하면서 “지하차도 게시판에 부착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실제 게시된 포스터는 1장이라고 한다.

이 포스터는 최근 SNS를 통해 논란이 되기 전까지 3개월 이상 지하상가 입구에 붙어 있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서에는 항의가 쏟아졌다. “우리나라 독립을 염원하며 단지(斷指)한 안 의사를 어떻게 테러리스트와 연관시킬 수 있느냐”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경찰들이) 공직자로서 역사·국가관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논란이 뜨거워지자 경찰은 해당 홍보물을 수거해 폐기하고 경찰서 SNS에 “안 의사를 폄훼(깎아내려 헐뜯음)한 것이 아니다”는 해명글을 급히 올렸다.

서복기 부평경찰서 경비교통과장은 “해당 직원이 ‘멈춤’을 의미하는 손바닥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다가 안 의사의 손도장을 사용했다고 한다. 세심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직원들을 상대로 역사·교양 등을 주제로 한 교육을 진행하고 업무 처리를 할 때는 간부들도 철저하게 확인하는 등 다각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윤원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안 의사는 사형 직전 일본 측에 ‘동양 평화 만세’를 외치게 해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로 평화와 화합을 중요하게 여겼던 분인데 테러·간첩 등 사회문제에 거론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안 의사의 삶과 성품을 잘 모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에 안타깝다”고 했다.

이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간첩 신고 등 안보 포스터나 표어 등에 안 의사의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서예 등 작품)을 넣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인천=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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