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이 이기는 길이다|목표와 수단의 정당성 모두갖춰야|성병욱 편집부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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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지 않은 『간디』라는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영국의 인도 식민지 당국은 소금 제조·판매를 전매화해 사적 소금제조를 금지시킨다. 「간디」를 지도자로 하는 인도인들은 이러한 식민 당국의 조치에 비폭력 불복종운동으로 맞선다. 흰옷을 입은 인도사람들이 소금을 만들러 염전으로가는 불복종 행진을 벌인다. 염전입구에는 이 행진을 막기 위해 경찰봉을 든 식민지 경찰이 포진하고 있다.
좁은 입구를 향해 인도인들이 한줄로 늘어서 다가온다. 선두에 선사람이 경찰봉에 맞아 쓰러진다. 그러면 다음 사람이 다가오고, 또 경찰봉에 맞아 쓰러지고…. 맞고, 쓰러지고, 그리고 또 다가오는 그러한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방망이를 내리치던 손에 힘이 빠지고 눈에는 공포심이 감돈다. 뉴욕 타임즈지를 통해 이 광경은 전세계에 전해지고 여론에 밀린 식민당국은 결국 금지조치를 취소하기에 이른다.
「마하트마· 간디」 는 비폭력을 앞장서 실천하면서 『비폭력은 이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능동적인 힘이다. 삶에서 비폭력을 표현하는 사람은 모든 종류의 잔인한 폭력보다 더욱 훌륭한 힘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금세기 비폭력운동의 선구자였던「간디」나 미국의「마틴·루더·킹」목사는 모두 폭력의 흉탄에 쓰러졌다. 그러나 그들이 실천했던 비폭력의 가르침은 인도의 독립과 혹인민권운동의 진전을 가져왔고 모든 인류에게 빛을 던져주고 있다.
민주화로의 대전환을 가져온 지난6월 시위의 승리는 목표와 수단이 모두 국민의 광범한 공감을 얻은데 기인한다. 호헌기도 분쇄·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민주화의 실현이란 운동목표가 우선 국민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목표가 아무리 좋았더라도 운동수단이 폭력적이었더라면 안정적 개혁을 요구하는 상당수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어 오히려 힘으로 진압되었을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 운동의 수단 또한 비폭력적이었기 때문에 유보없는 국민적지지를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두달이상 계속되고 있는 노사분규의 경우는 좀 상황이 다른 것 같다.
우선 노동자들이 추구하는 목표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자체가 엇갈린다. 그동안 경제성장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노동자들이 기여한 만큼의 배분을 받지 못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때문에 노동자들이 보다 나은 배분, 인간적 대접을 요구하는데 대해서는 공감의 폭이 넓다. 그동안 권력의 그늘에서 편하게 사업해온 기업가들이 발상의 대전환을 해야한다는 소리가 높다.
다만 일시에 봇물 터지듯이 쏟아지는 노사분규의 사태현상과 일부 근로자의 과도한 요구에 대해서는 공감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측면이다.
더구나 쟁의의 수단에 이르러선 걱정을 넘어 분노의 소리까지 둘린다. 현행법의 쟁의절차를 무시한 파업이나 시위의 합법성 문제는 논외로 하자. 현행의 노동법체제에 대해 여야 모두 문제가 많음을 인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쟁의의 수단이 적어도 폭력적 양상은 띠지 말아야 한다. 목표 관철을 위해, 또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분풀이로 회사의 기물을 부수고, 간부들을 능멸하고, 도로를 막고, 공공기관을 점거하고, 파업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승객이 타고 있는 택시에 돌을 던지는 식이어서는 아무리 목표가 정당하더라도 공감을 얻지 못한다.
6·29선언이후 발생한 3천여건의 노사분규중 폭력적 양상을 띤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분규는 노사간의 대화로 원만히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 극히 일부의 탈선이 노사분규에 대한 인상을 상당히 그르치고 있고 급기야는 당국의 강력한 대응을 불러들였다. 6월시위의 비폭력 행동지침이 민주화로의 빛을 던졌다면 일부 노사분규외 폭력적 양상은 민주화 도정에 그늘을 드리운 셈이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권력의 막강한 힘을 당하지 못한다. 때문에 어떤 주장이 이기기 위해선 권력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거나 중립화시킬 도덕적 호소력을 지녀야 한다. 진정한 비폭력은 원래 도덕적인 요구로서, 단순히 효과적이기 때문에 채택하는 계략같은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하나의 방편으로라도 비폭력을 사용하려는 용기는 한 단계의 전진으로 평가받는다.
비폭력은 도덕적일뿐 아니라 방편으로서도 현책이다. 도덕적이기 때문에 강력한 호소력을 지녀 대중의 지지를 모은다. 또 수단이 비폭력적이기 때문에 그 주장에 반대하는 세력에 힘을 쓸 구실을 주지않는다.
반대로 주장이 아무리 정당해도 수단이 폭력적이거나 정당하지 않으면 호소력도 떨어지고 반대세력에 반격의 빌미만 제공하게 된다.
폭력은 한때 감정적으로 시원할지는 몰라도 결국 패배를 가져다준다.
이러한 이치는 노나 사나, 여나 야나, 현상타파 쪽에나 현상유지 폭에나 똑같이 해당된다. 이 중대한 민주화의 갈림길에서 비폭력이 참다운 용기요, 궁극적으로 이기는 길이란 인식이 이 사회에 보다 깊고 넓게 확산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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