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외국인들 "배울 곳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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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같이 일하는 사람의 설명을 거의 못 알아들었어요. 높임말도 몰랐고요. 지금은 사장님이 '우리 아가씨 요즘 한국어 잘한다'며 좋아하세요."

4년 전 한국에 와 재봉 일을 하는 몽골인 아롱자갈(36.여)씨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그는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의 한국어교실에 2년째 다니고 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다양한 국적의 친구도 생겼다는 그는 "몽골에 돌아가 한국어 학원에서 가르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는 2001년 말부터 외국인근로자를 위한 한국어교실을 일요일마다 열고 있다. 8학기째 운영 중인 한국어교실은 신입생을 모집할 때마다 신청자가 너무 많아 고민일 정도로 인기다. 김혜원 교육문화팀장은 "경기도는 물론 천안에서도 학생들이 온다"며 "불법 체류자 단속이 뜨면 학생 수가 급감하고,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공장이 많아 결석도 잦지만 배우려는 열의는 상당히 높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4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어가 서투른 외국인 근로자들은 기계 작동법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다치거나, 병원에 가도 어디가 아픈지 설명을 못 하는 등 답답한 것투성이다. 하지만 이들이 체계적으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드물다. 김 팀장은 "특히 지방은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전문교사가 없고, 유학생이 아닌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교재도 부족해서 대부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한다.

국제결혼으로 이주해 온 외국인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의 필요성도 높아졌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필리핀 출신 맨드루(35.충남 청양군)씨는 "한글을 잘 쓰지 못해 아이 공부를 봐줄 수도 없고, 알림장에 적힌 준비물을 챙겨주기도 힘들다"며 "특히 사투리나 높임말은 배우기가 어려워 정부에서 가르쳐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국문해성인기초교육협의회의 만희 공동대표는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 엄마를 둔 자식들은 나중에 또 다른 비문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실제로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가 2004년 몽골 출신 외국인 근로자의 자녀 22명을 조사한 결과 모두 "한국말을 잘 못하고, 한국 역사 등을 몰라 공부가 어렵다"고 대답했다. 이 중 4명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둔 상태였다. 이 센터의 김준식 관장은 "외국인 이주자의 자녀가 청년이 될 때쯤엔 프랑스의 이민계층 소요 사태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도 생길 수 있다"며 "우리 후손을 위해서라도 이들을 보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남중.한애란 기자, 김종원(한국외대 3년).유지윤(연세대 3년)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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