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내양과 추억여행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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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이. 버스가 출발합니다."

25일 오전 10시 충남 태안군 태안읍 남문리 태안공영버스터미널. '태안여객' 소속 농어촌버스 출입문 앞에서 자주색 유니폼 상.하의 차림을 한 정화숙(39.여.태안군 태안읍)씨가 승객 10여 명을 태우고 있다.

승객이 차에 쉽게 오를 수 있게 손도 잡아주고 짐도 챙겨준다. "어서 오세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라는 인사말도 잊지 않는다.

승객이 버스에 타자 추억이 담겨있는 '오라이'로 출발을 알린다.

승객들은 오랜만에 보는 안내양의 모습에 "새롭지만 친근한 느낌이 든다"며 미소를 머금었다. 정씨는 자주색 빵모자를 쓰고 돈과 승차권을 담는 가죽가방도 메고 있다. 그는 운행 중에 지역 특산물 등을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이번에 내리실 곳은 '근흥면사무소' 입니다. 내리실 분 안 계세요?"

버스가 출발한 지 10분쯤 지나자 정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차하겠습니다"라는 안내와 동시에 버스가 멈추자 60대 여성 승객 한 명이 보따리를 들고 출입문으로 나왔다. 정씨는 승객이 안전하게 내릴 수 있게 팔을 부축했다. 승객이 내리자 버스 옆면을 "탕탕" 두드리며 다시 "오라~이".

22년 만에 버스 안내양이 등장했다. 태안군은 잊혀져 가는 추억을 되살려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농어촌버스안내양 제도를 도입, 이날 시범 운행했다.

버스 안에는 '고교 얄개' '바보들의 행진' 등 1970~80년대 영화포스터도 달았다. 옆면에는 '추억으로 가는 포구여행'이라는 문구가 있다.

안내양 버스는 다음달 본격 운행된다. 노선은 터미널에서 채석포 항과 연포해수욕장을 거쳐 돌아오는 1개 코스(25km구간.정류장 35곳)다. 이 구간에는 항.포구 5개와 해수욕장 2개가 있다.

노선에 있는 근흥면 정죽리 갈음이 해수욕장에서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연포해수욕장에서는 영화 '바보선언', 드라마 '슬픈연가'를 찍었다.

군은 관광객들의 반응이 좋으면 내년부터 안내양 버스를 확대 운행하기로 했다. 안내양 정씨는 버스회사 직원이나 급여(월 130여만원)는 군이 지원한다.

안내양 버스가 운영되자 승객과 주민들은 크게 반기고 있다. 승객 이주분(60.근흥면 마금리)씨는 "20년 전과 똑같은 안내양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가슴이 설렌다"며 "무거운 짐도 들어줘 버스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 안내양=80년대 이전 버스 안내양은 여공과 함께 대표적인 '여성 직업'이었다. 서울에서 61년부터 버스 안내원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다. 65년 전국의 버스 안내양 수는 1만7160명. 대부분 18세 전후의 나이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배움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업 현장에 뛰어들었다. 안내양은 82년 시민자율버스가 생기면서 점차 사라졌다.

태안=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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