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신년기자회견] 헷갈리는 '세금'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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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은 지난 18일 신년 TV 연설에서 정부가 예산 절약 등을 아무리 해도 한계가 있다며 중장기 미래 대책을 위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증세(增稅.세금을 더 거두는 것)'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25일 기자회견에서는 "신년 연설에서 언급한 말을 증세 논쟁으로 끌고가 정략적 공세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재정과 복지지출 규모에 대해 책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했는데 정략적으로 증세 논쟁으로 끌고갔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지금은 증세 논쟁을 할 때가 아니라 감세 주장의 타당성을 따져봐야 할 때"라며 야당의 감세론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이에 대해 재정 규모 등에 대한 책임있는 논의가 곧 증세가 필요한지를 따져보는 일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노 대통령은 또 부동산 문제에 대해 "부동산 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한 집요한 노력이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부동산 시장이 불안한 원인을 특정 세력 탓으로 돌린 것이다.

◆ "당장 증세한다는 것은 아니다"=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의 요지는 '미래를 위해 돈을 더 마련해야 하지만 당장 세금을 올리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증세 대신 다른 모든 방법을 강구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2030년까지 중장기 계획을 세우다 보면 근본적인 재원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지 당장 증세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증세 없이 정부가 그리는 미래대책을 위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정부의 구상은 각종 비과세.감면을 줄이고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에서 세금을 제대로 거두겠다는 것이다. 또 예산 절약과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양대 나성린 교수는 "현실적으로 이런 방법으로 수십조원에 달하는 재원을 충당하는 것은 어렵다"며 "정부가 원하는 양극화 해소,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는 세금을 올리는 게 필요한데 에둘러 증세 논의를 피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증세 논쟁이 선거에 미칠 영향 때문에 이를 서둘러 잠재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나 교수는 또 "조세 감면을 없애면 서민과 중소기업이 어려워지고, 국채를 늘리면 나랏빚이 느는 등 부작용이 커진다"고 말했다.

◆ "투기세력은 성공하지 못할 것"=노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 안정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며 "수요와 공급을 통한 부동산 가격 안정대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추가 안정대책에는 분양가 인하, 재건축 규제, 전세.월세 안정방안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분양가 인하를 위해 후분양제를 조기 도입하고, 재건축 승인 권한의 일부를 중앙정부로 돌리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보는 시각은 전혀 다르다.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430조원의 유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을 기웃거리고, 판교 신도시.혁신도시.기업도시 등 부동산 가격 상승을 자극할 요인도 즐비하다.

부동산 시장을 꿈틀거리게 하는 것은 정부가 지칭하는 일부 저항세력이 아니라 이런 시장 여건이다. 때문에 시장 여건을 개선하지 않는 상태에서 억누르기만 하는 추가 대책으로는 부동산 시장의 후유증만 더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종윤.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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