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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인생 정민씨, 연봉 4000만원 회사에 들어간 비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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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청년실업시대 취업사관학교

인생은 블루마블 게임이다. 고교와 대학을 실패해도 인력개발원과 같은 공공 직업학교 ‘사다리’를 통해 인생항로에 다시 올라탈 수 있다. 연봉 4000만원의 김정민씨도 한때 ‘알바인생’이었다. [사진 장진영 기자]

인생은 블루마블 게임이다. 고교와 대학을 실패해도 인력개발원과 같은 공공 직업학교 ‘사다리’를 통해 인생항로에 다시 올라탈 수 있다. 연봉 4000만원의 김정민씨도 한때 ‘알바인생’이었다. [사진 장진영 기자]

인천 남동공단의 일본계 공작기계부품 제조업체 한국닛켄의 입사 2년차 김정민(27)씨. 회사 2층 사무실에 있는 김씨의 책상 모니터에는 검은 바탕에 가로·세로줄이 복잡하게 늘어서 있는 기계 설계도가 떠 있다. 그는 연매출 160억원에 직원 80명의 조그만 회사의 막내 직원이지만 연봉과 근무조건은 일류 대기업이 부럽지 않다. 지난해는 수습기간이 포함돼 연봉이 3500만원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4000만원이 넘을 전망이다. 근무는 주 5일에, ‘칼출퇴근’(오전 8시 반~오후 5시 반)이다. 그가 하는 일은 회사의 핵심업무인 공작기계용 부품설계다. 컴퓨터 설계(CAD)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초정밀 설계를 한다. 마무리한 설계도는 1층 공장으로 전송돼 실제 모양으로 구현된다.

구직자 몰리는 상의 인력개발원
부산 등 전국 8곳서 연 3000명 교육
현장중심 교육으로 취업률 85%
식비·교육비 무료 매달 20만원 용돈

15세 이상 실업자 누구나 지원 가능
50·60대는 전기기술 배워 직접 창업
4차산업혁명 교육센터 올해 개설

지금은 가족과 친구들의 자랑거리이지만 수년 전까지만 해도 김씨는 한국 ‘청년실업’의 대표모델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처지였다. 2009년 2월 인천의 한 공업고등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지만 건축경기 불황 탓에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평소 옷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전문대 패션디자인과로 진학했다.하지만 막상 해보니 자신이 원하는 전공이 아니었고 어울리는 일자리도 없었다. 전문대 졸업 후엔 옷가게 점원과 고깃집 숯불 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2013년에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가서 식당·호텔 청소와 손세차 등도 했다. 하지만 모이는 돈이 없었다. 영어도 하지 못하고 기술이 없다 보니,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수 없었다. 더욱 큰 고민은 삶에 대한 비전이 없다는 것이었다.

인천인력개발원 메카트로닉스과의 수업장면. 책상과 실습장비가 한 교실에 있는게 이채롭다.

인천인력개발원 메카트로닉스과의 수업장면. 책상과 실습장비가 한 교실에 있는게 이채롭다.

2014년 1월 호주에서 돌아온 김씨는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인력개발원을 소개받았다. 무료로 전문기술을 배우면서 숙식은 물론 용돈까지 받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3월 인천인력개발원에 입학한 김씨는 컴퓨터응용기계설계제작 과정을 선택했다. 주변 공단에 취직하기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10개월간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빡빡한 수업일정이었지만, 김씨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공부했다. 10개월 과정이 끝난 뒤에는 다시 같은 전공의 심화과정 10개월 수업을 더했다. 이렇게 2년을 보내고 나니 컴퓨터응용가공산업기사와 선반·밀링·금형 기능사 등 자격증을 4개나 딸 수 있었다.

기술과 자격증이 있으니 취직은 어렵지 않았다. 졸업을 앞둔 2015년 말 그는 개발원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한국닛켄에 입사할 수 있었다.

김씨는 “그간 취업을 하려고 몸부림을 쳤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내 책상과 내 컴퓨터, 내 회사가 생겼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 같은 취업 사례가 입소문을 타면서 대한상공회의소가 운영하는 인력개발원에 취업자들이 몰리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소위 SKY로 상징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지만, 인력개발원은 예외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부산·인천·광주 등 전국 8개 인력개발원에서는 한 해 3000명 안팎의 학생들이 전문기술을 익히고 있으며, 과정을 마친 사람들의 평균 취업률은 85%를 넘어서고 있다. 높은 취업률의 비결은 ‘현장중심 교육’이다.

전국 8개 인력개발원은 각 지역의 인력수요조사를 통해 기업체에서 요구하는 기술내용과 직무수준을 고려해, 이를 반영한 훈련과정을 개발하고 있다. 대학교육과 달리 실기 대 이론 비율이 7대3에 이를 정도로 훈련과정이 실습위주로 편성돼 있다. 올해는 4차산업혁명과 관련한 기술교육을 주도할 서울기술교육센터도 문을 연다. 빅데이터 서비스개발과 정보기술(IT)융합 전자부품디자인, 무인화 생산공장 전기시스템 등 6개 과정이다. 특성상 전문대학 이상 졸업한 이공계 미취업자에 지원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기존 8개 인력개발원은 15세 이상 실업자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입학생들의 절반은 고교 재학(17.8%) 또는 고교 졸업생(30.9%)이지만, 4년제 대학 졸업 또는 중퇴생도 31%를 넘어선다. 대학원 이상 졸업생도 있다.<그래픽 참조> 이들은 대부분 인문계열이거나, 전공이 맞지 않아 쓸모있는 전문기술을 배우기 위해 입학한 사람들이다. 전공은 기계·전기·정보통신·가구디자인·애니메이션 등 총 21개에 달한다. 무엇보다 큰 혜택은 교육비와 기숙사비·식비가 전액 무료라는 점이다. 여기에 매달 20만원의 교육수당도 받을 수 있다. 산업기사와 같은 국가기술자격증 취득지원과 취업알선 등의 혜택도 많다.

덕분에 연령도 다양하다. 가장 많은 연령대는 20대(54.2%)이지만, 50대(1.7%)와 60대 이상(0.38%)도 더러 있다. 50·60대 중에서는 전기기술이나 가구디자인을 공부해 창업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인력개발원 측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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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동 인천인력개발원 기획팀장은 “실무 위주의 교육으로 현장 적응력을 높인 인력개발원 졸업생들은 취직도 어렵지 않을 뿐 아니라 특별한 재교육 없이 업무에 바로 투입되고 있어 기업체들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개발원에 따르면 개발원 졸업생들은 평균 2500만원 이상의 연봉을 주는 직장에 취직된다. 72개 지방 상의와 16만 회원사의 네트워크도 인력개발원의 강점이다. 인력개발원(www.korchamhrd.net)은 오는 28일까지 2017년도 신입교육생 3800명을 모집한다.

글=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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