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즈 칼럼] 줄어드는 쌀 소비, 쌀가루 산업으로 돌파하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정황근 농촌진흥청장

정황근
농촌진흥청장

어릴 적 동네어르신을 만나면 드리는 인사가 “아침 드셨습니까?”였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쌀이 부족해 아침 식사를 거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밥은 우리 삶에 중요한 문제였고, 쌀밥을 먹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었다.

당시 정부는 원조를 받는 가운데서도 쌀 자급을 위해 총력을 다했다. ‘통일벼’는 보릿고개를 넘어 쌀 자급 100%를 이루게 한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61.9㎏으로 30년 전 127.7㎏과 비교하면 절반으로 줄었다.

‘나홀로족(族)’이 전체 가구의 30% 가량을 차지하고 여유롭게 아침을 즐길 시간이 없는 현대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간편 식사를 원하게 됐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 속에 다양한 레시피로 소비자를 공략한 것이 수입 밀가루다.

밀가루는 연간 200만t 정도 소비되는 반면 가공용 쌀 소비량은 40만t 수준에 머무른다. 그간 ‘쌀=밥’이라는 고정관념이 달라진 소비자의 변화에 제때 대응하는 것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쌀이 남아돈다면 보관관리비를 포함해서 연간 약 5000억원의 세금을 써야 할 상황이다. 그래서 과잉인 쌀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게 국가적 해결 과제가 됐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기업들과 공동으로 컵밥·햇반·냉동밥 등 다양하고 영양만점인 간편식을 개발, 보급하고 일부는 수출까지 되고 있다. 또 쌀을 밀가루처럼 쉽고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쌀가루산업 활성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쌀가루 전용품종 육성과 쌀가루 가공기술 및 제분기 개발에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쌀은 밀보다 가공과정이 어렵고 복잡하다. 가공비용 또한 밀가루의 3배 가까이 들기 때문에 기업이 관심을 갖지 않아 그간 쌀가루 확산이 어려웠다. 그러나 농진청에서 밀가루처럼 둥근 형태의 전분 구조를 가진 건식 쌀가루 전용 품종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지난해 말 ‘한가루’라는 품종으로 출원하면서 변화의 조짐이 불고 있다.

이를 가공해 만든 빵·면·맥주 등의 시제품이 식품관련 학계와 전문가 그룹에서 밀가루를 대체할 상품으로 그 가치와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제는 쌀이 라면이나 국수, 파스타, 빵과 쿠키 등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가공식품의 형태로 국민 식생활을 점차 바꿔나갈 전망이다. 쌀이 가루로 유통된다면 국민 식탁에 일대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올해엔 ‘한가루’의 조기 증식과 더불어 2개 품종을 새로 출원할 예정이고, 동시에 여러 식품기업에서 쌀가루산업화에 나서려고 계획 중이다. 앞으로 밀가루처럼 소비자들이 마트에서 소포장 쌀가루를 식품 소재로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고, 쏟아져 나오는 밀가루 가공식품들도 쌀가루로 점차 대체될 것이다.

연간 소비되는 밀가루 200만t중 10%인 20만t만 쌀가루로 대체해도 심각한 쌀수급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민족의 생명선인 쌀을 지키면서 농업인 소득,국민건강까지 1석3조 효과를 기대해 보자.

정황근 농촌진흥청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