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로 탄핵 찬반 시위로 두 동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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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호 02면

“국민 원하는데 탄핵 왜 어려운지” vs
“돈 받고 동원됐다는 보도에 열 받아서 나왔다”

보수·진보 설 이후 첫 동시집회 #“탄핵 심판 늦어지며 갈등 격화”

4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대한문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1.2㎞가량의 10차로는 이날 두 동강이 났다. 경찰이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 설정해 놓은 50여m가량의 ‘완충구간’을 사이에 두고 북쪽 방향엔 촛불을 켠 이들이, 남쪽 방향엔 태극기를 흔드는 이들이 도로를 채웠다. 외치는 구호 내용도 ‘조기 탄핵, 박근혜 구속’과 ‘탄핵 기각, 특검 해체’로 극명한 대립을 보였다. 부르는 노래도 달랐다. 촛불집회에선 ‘아름다운 사람’ 등 민중가요가, 태극기집회에선 애국가와 ‘아! 대한민국’ 등 건전가요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설 연휴 이후 첫 주말인 이날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과 특검 수사에 대해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단체들이 동시에 집회를 열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보수단체들이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주축이 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는 오후 2시 대한문 앞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열었다. 서울광장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지방에서 단체로 버스를 대절해 상경한 중·장년층으로 가득 채워졌다. 새누리당 김진태·윤상현·조원진 의원 등도 참석했다.

일부 군복을 입고 나온 참석자도 있었지만 정장을 차려입은 이도 상당수 있었다. 집회가 진행되는 도중 ‘인증샷’을 찍거나 삼삼오오 모여 차를 나눠 마시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이도 있었다. 자녀와 손자 등과 함께 시위에 참석한 한 60대 여성은 “돈 받고 시위에 동원됐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열 받아서 손자까지 데리고 나왔다. 여론몰이로 대통령 자리를 강탈하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전직 공무원인 황모(80)씨는 “언론이 문제점을 추적해 보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번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판결까지 내려 버렸다. 여론몰이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금융기관에서 일했던 이광훈(82)씨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 조언을 들은 게 대통령을 탄핵할 만큼 잘못된 일인지 모르겠다. 종북세력의 선동에 나라가 엉망이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3시간 뒤인 오후 5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전날 청와대가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거부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박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주장했다. 초등학생인 두 딸을 데리고 인천에서 온 이경숙(41)씨는 “국민이 다 원하는데 왜 탄핵이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춥지만 애들이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된다고 말해 같이 왔다”고 했다. 대학생 김모씨는 “나라를 정상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에 혼자 나왔다. 청와대가 특검팀의 정당한 압수수색까지 거부하고 탄핵심판 절차를 지연시키려 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5일 최순실(61·구속)씨가 특검에 출석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할 때 최씨를 향해 “염병하네”라고 외쳐 화제를 모았던 미화원 임모(65·여)씨도 자유발언자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저는 미화원으로 일하며 나라에 세금을 꼬박 냈습니다. 그런데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씨가 감히 민주주의 운운하며 억울하다고 해 ‘염병하네’를 외쳤습니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둘로 갈라진 집회가 심화되는 양상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탄핵심판 등 제도를 통한 해결 절차가 지체되면서 불필요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갈등이 더 격화되기 전에 불확실성이 빨리 해소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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