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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인종·종교 화약고 건드린 트럼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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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종·종교차별이라는 세계의 화약고를 건드렸다. 이슬람권 7개국 국민들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인 반이민 행정명령을 강행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무역장벽과 멕시코 국경장벽을 현실화했다. 이번 행정명령은 ‘입국장벽’으로 트럼프판 세 번째 장벽이다.

이슬람 7개국 국민 입국금지
무역·국경 이어 3번째 장벽
“이건 미국 아니다” 곳곳 시위
메르켈·트뤼도 등 우려 표명
“극우의 무슬림 반감 키우고
테러 집단엔 반미 선동 명분”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행정명령에 따른 국내외 반발이 확산되자 반박 성명을 내놨다. 그는 “행정명령은 무슬림(이슬람교도) 입국 금지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번 행정명령에 영향을 받지 않는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는 40개가 넘는다”고 덧붙였다. 이번 행정명령은 테러 위협을 막기 위한 조치로 철회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언론은 알면서도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다”며 언론을 탓했다. 그러나 거센 반발을 의식한 듯 트럼프 행정부는 한발 물러서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미 영주권 소지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7일 서명한 반이민 행정명령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번 행정명령은 이라크·시리아·이란·수단·리비아·소말리아·예멘 등 7개국 국민들의 미국 입국을 90일간 금지시키는 조치다. 1억3400만 명이 대상으로, 미국 공항에선 해당 입국자들의 억류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미국 댈러스 국제공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기도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한 소녀가 성조기를 흔들며 뛰어놀고 있다. [로이터=뉴스1]

29일(현지시간) 미국 댈러스 국제공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기도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한 소녀가 성조기를 흔들며 뛰어놀고 있다. [로이터=뉴스1]

미 언론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이번 조치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이슬람권의 반발을 사며 테러 집단들의 반미 선동에 명분을 준다는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행정명령으로 이라크 등 우방과 멀어지고 있으며 미국을 중동의 십자군 전쟁의 주역으로 비난해온 테러 집단에 선전거리를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일부 외신들은 행정명령이 지구촌 극우 세력의 무슬림에 대한 반감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의 반이슬람운동가 게르트 윌더스는 “무슬림 입국금지는 안전한 사회를 위한 유일한 방안으로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유럽 극우파들도 일제히 환영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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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치로 수도 워싱턴 등 곳곳에선 “이건 미국이 아니다”는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뉴욕·보스턴 등의 연방 법원들은 억류자들의 본국 송환을 금지하는 긴급 판결을 내렸다. 워싱턴과 15개 주의 법무장관은 공동성명을 내고 “행정명령은 헌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등도 우려를 표명했다. 취임 2주일도 안 돼 트럼프의 정책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이날 캐나다 퀘벡시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는 괴한들이 총격을 가해 최소 6명의 무슬림이 사망해 갈등이 증폭되리라는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북미 대륙에 잠재된 반무슬림·반이민 정서가 총격 테러로 드러났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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