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00년 남북정상회담 전후 대규모 경제협력계획(마셜플랜?) 마련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뉴스위크 한국판은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전후 남측의 ‘경제협력 추진방안 및 협상전략’을 담은 4건의 ‘대외비’ 문건을 독점입수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만든 이 문건들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5월 27일과 6월 6일에 작성돼 남북정상회담 당시 경제 분야의 기본 자료로 활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2건의 문건이다.

다른 하나는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7월 8일과 7월 19일에 작성돼 국민의 정부 기간동안 남북경제협력추진에 대한 기본 계획을 제시하고 있는 2건의 문건이다. 정상회담 이전 문건들은 정상회담 의제 중 경제분야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담한 제안과 협상 전략을 설명하고 이 담겨 있고, 정상회담 이후의 문건들은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10년 정도까지 소요될 수 있는 대규모 개발계획 및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경협플랜이 담겨 있다.

이 내용들은 한국정부의 협상전략과 일방적 계획을 담고 있는가 하면 한국정부의 내부적 문서의 성격을 갖고 있어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된 바 없다.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최근 대북송금 특검 수사를 받으면서 이 문건들을 제출했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2000년 6월 6일 국민의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전력지원 방안 및 김일성의 유훈사업 성격을 띤 남북한 철도 연결에 대한 최종전략을 마련했다. 그리고 남북경제협력을 뒷받침할 상설기구로 서울과 평양에 각각 ‘경제상주대표부’ 또는 ‘무역대표부’를 설치·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키로 했다. 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7월 8일에는 2000년∼2002년 3년간에 걸쳐 정부 부분에서 10억달러, 민간부분에서 15억∼26억달러 등 총 25억달러∼36억달러에 이르는 경제협력 사업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더해 정부차원에서 5억달러를 무상으로 지원키로 해 대규모 경제협력 및 지원사업규모는 41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종의 한국판 ‘마셜플랜’이었던 셈이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주요 비판의 근거로 활용되는 ‘상호주의 원칙’도 정상회담 전까지는 기본 원칙의 하나로 유지되고 있었으나 정상회담 직후부터 ‘사실상’ 포기됐음이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2000년 6월 14일 북한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남북한 단독 정상회담에 배석한 북측 인사는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 한사람뿐이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 옆에는 이기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이 배석했다. 김 위원장과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배석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첫 정상회담인 만큼 남북한 상호간의 신뢰구축 방안과 통일 문제에 대한 최고위급 실무 인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호 전 경제수석의 배석은 뜻밖이었다. 그렇지만 DJ 정부의 햇볕정책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대규모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원사업을 통해 신뢰를 확보하고 북한을 개방화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아가게 한 다음 점진적으로 통일을 논의해 가자는 햇볕정책의 입안자였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3월 9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연설을 통해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다. 이날 김 전 대통령은 남한은 북한의 안전 보장·경제 회복 지원·국제적 진출 협력 등을 제공하겠으니 북한은 대남 무력도발과 핵개발을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경제회복지원에 대한 구체적 방안으로 지금까지의 민간 경협을 넘어서서 정부 차원에서의 철도·전력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안 등을 제시했다.

2000년 3월 9일 통일부 자료에 의하면 정부는 베를린 선언을 구체화하기 위해 남북경협을 통한 북한 경제회복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농업구조 개선 지원을 통해 북한 식량난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고, 북한에 물품 자본 기술을 제공하고 북한 노동력을 활용해 수출산업을 육성함으로써 북한을 국제시장경제에 편입시키고 외화를 벌 수 있게 함으로써 경제체제를 변화시키는 방안이다. 또 정경분리에 의한 민간차원의 경제교류협력을 활성화해 사회간접자본을 확충지원하면서 남북경제공동위 설치 및 투자보장협정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베를린 선언과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남북정상회담의 초석이 됨은 물론 이번에 뉴스위크 한국판이 입수한 네 건의 대외비 문건의 기초가 된 셈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정부는 남북경제협력 추진및 협상전략에 대한 구체적 방안 마련에 들어갔고, 뉴스위크 한국판이 입수한 4건의 대외비 문건 중 2000년 5월 27일과 6월 6일의 문건이 이에 해당한다. 29쪽에 달하는 5월 27일자 문건은 대단히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6월 6일자 문건은 정상회담 직전의 요약본에 해당된다.

정상회담에 앞서 정부는 남북경제협력의 기본 골격을 세가지로 잡았다. 첫째 전력·철도·통신 등 SOC 사업 협력, 둘째 경제교류협력을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 및 협력기구의 설치, 셋째 대북 국제경제협력체제 구축 지원 등이다.

일례로 전력사업 부분에 대한 추진 방안을 보자. 문건은 북측의 전력 현황을 평가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북한은 전력설비 노후화 등으로 전력이 절대 부족, 98년말 현재 북한의 발전량은 2백12만kw로 총 발전설비용량(9백22만kw)의 23% 수준을 이용하는데 그치고 있음(전력수요량 4백20만kw에 비해 약 2백8만kw 부족),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고 있는 분야로서 최우선적으로 요청”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협력방안인데 “전력난은 발전소 부족보다는 발전량 부족에 기인하므로 연료 지원 및 성능복구 지원 등을 우선 추진”하되 그 구체적 방안으로 “발전용 무연탄 지원(연간 60만t)”을 제시했다. 재원조달 및 협상계획으로는 “장기저리로 상환토록 하는 방법을 제안하되, 남북 철도가 연결되면 무상지원할 수 있음을 제안”하고 “수송비용은 북한이 광물자원으로 갚을 것을 제안”하기로 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협력 방안으로는 “북한의 노후 발전소 성능 복구사업을 지원”하고 “소용량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며 더불어 “국내 운휴발전기 이설방안”까지도 병행 검토했음이 밝혀졌다.

논란이 돼 왔던 남한 전력의 대북한 송출도 중요한 협력 방안의 하나로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두 문건에 따르면 “소규모의 남북한 전력계통 연계사업을 우리측의 협상 ‘지렛대’로서 추진하고, 소요재원은 남북협력기금에서 조달”하며 문산-개성간(30km) 22.9kv 배전선로를 연결해 연간 0.5억 kwh의 전력을 공급하고, 문산-남천간(75km) 1백54kv 송전선로를 건설해 연간 10억5천 kwh의 전력을 제공한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마련했음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사업에는 각각 25억원과 5백억원의 투자비가 소요되며, 연간전력비용도 36억원, 7백52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또한 북한 내 송배전 시설 확충사업을 벌이되 “신규 송배전선 건설은 남북한 전력계통 통합과 연계해서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잡았다. 전력사업은 북한이 가장 시급하게 요청하고 있는 사업이므로 남북경협 활성화에 기여하고 북한 현지에 진출한 남한기업 등의 전력 문제도 해결할 수있을 것으로 평가됐다.

‘남북한철도연결 및 복선화’에 대해서는 예상되는 북측의 입장까지도 다각도로 검토했음을 알려주는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경의선 철도 연결 사업이 김일성의 유훈사업이었다는 것이다. 문건에 따르면 “김일성은 사망 직전 ‘신의주와 개성 사이의 철도와 동해 북부선 철도를 복선화하여 러시아 및 중국과 한국의 수송로를 연결하면 연간 15억달러의 외화를 획득할 수 있다’고 언급”했던 것으로 기재돼 있다.

경제분야 의제에 대한 정상회담 준비는 재경부 등 경제부처가 아닌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몫이었다. 이번 단독 입수 문건은 경제수석실에서 작성했지만 정보기관만이 파악할 수 있는 북한에 대한 다양한 정보까지도 활용했음을 알려준다. 따라서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정부는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이 김일성의 유훈사업이기 때문에 “현재 북측에서 남북경제협력의 관심사업으로 삼고 있음”이라고 단정지을 정도였다. 철도 부분에 대한 협력 사업은 경의선 미연결 구간 복원 및 복선화(문산∼신의주, 389kw)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경원선(신탄리∼평강, 사업비 2천6백8억원)·금강산선(철원∼내금강, 사업비 1조2천억원)·동해북부선(강릉∼온정리, 5조5천억원)복원까지도 제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건에 의하면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상설기구로 ‘경제상주대표부’ 또는 ‘무역대표부’ 설치를 제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북한측이 ‘2개 국가화’를 우려해 이 제안을 반대할 경우 서울과 평양에 각각 양측의 ‘남북경제협력사무소’를 설치해 민간차원의 경협 지원기능을 수행하는 방안까지도 준비했다. 만일 북측이 “‘남북경제협력사무소’도 반대할 경우엔 판문점 내에 ‘남북경제 교류·협력센터’를 설치·추진”하며 이 협력센터 내에는 “회의실·투자상담소·전시장·물류센터 설치 등을 병행 추진하는 방안”까지도 전략적으로 검토하고 제안했음이 확인됐다. 또한 정부는 주요사업별 재원규모 및 조달방안에 대해서도 검토 자료를 남겨두고 있는데 남북협력기금 소요를 1조2천1백10억원으로 잡고 있고, 이르쿠츠크 가스사업은 국제 컨소시엄 형식을 통해 1백10억달러를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경제분야에 대한 정부의 이런 ‘남북경제협력 추진방안’과 ‘협상전략’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경제협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