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세계 1위인데 생산성은 32위 … 한국도 혁신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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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을 열심히 하는데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렸지만 개개인 삶의 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미국 등 선진국의 고민거리인 ‘혁신의 역설(Innovation Paradox)’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대로라면 대선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4차 산업혁명’ 구현이 쉽지 않을 수 있다.

ICT분야 혁신 정체기 빠져
투자가 성장으로 못 이어져
전기 발명 같은‘강한 혁신’
4차 산업혁명 위해 꼭 필요

산업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기술 혁신과 제도 개선을 통한 한국 경제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6~2010년 5년간 연평균 2.58%에서 2011~2015년 0.97%로 떨어졌다. 노동·자본 투입 증가분을 빼고 경제성장 요인의 기여도를 총합한 총요소생산성(TFP·Total Factor of Productivity)으로 따져 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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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P가 하향하는 사이 경제성장률도 하락했다. 2006~2010년 한국의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약 4%. 2011~2015년엔 2.92%였다. 이 기간 한국의 기술 혁신 수준은 외형상 세계 최상위였다. 2015년 한국의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4.23%로 세계 1위, 국내 민간 기업의 R&D 투자액은 첫 50조원을 돌파했다. 정부 R&D 예산도 지난해 19조원까지 증가했다. 그중 3조원 이상이 차세대 성장동력인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대한 투자였다. 한국은 이런 노력에 힘입어 지난 17일 블룸버그가 발표한 ‘2017 혁신지수’에서 4년 연속 세계 1위에 올랐다. 블룸버그 혁신지수는 7개 항목에서 점수를 매긴다. 한국은 R&D 지출액 등 3개 항목에서 1위였지만 생산성은 32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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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노력에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 지난해 12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가·기업들이 혁신에 자원·역량을 쏟고 있음에도 생산성 향상은 억제되는 ‘혁신의 역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기술의 혁신 강도가 약해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개선의 원동력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WSJ는 단적인 예로 비행기를 들었다. 비행기는 1960년대 이후론 더 빠르게 날고 있지 않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 같은 낙관론자들은 4차 산업혁명이 충분한 기술 혁신으로 미래의 경제성장을 담보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로버트 J 고든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지금은 혁신의 정체기”라고 단언한다. 전 세계가 혁신의 역설을 뚫고 과거처럼 폭발적 경제성장을 하려면 전기·비행기를 발명했을 때와 같은 ‘강한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

제조업과 최신 ICT 등의 융합으로 경제·사회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차세대 산업혁명.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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