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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정은 집권 5년, 파워엘리트 31% 물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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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집권 후 5년 동안 고위 간부 4분의 1을 물갈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가 북한 파워엘리트 300명의 신상과 경력을 담아 지난 24일 발간한 『2017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인명록)를 분석한 결과다. 통일부는 북한의 공식 발표와 관영 언론에 공개된 인물을 토대로 노동당 부부장급·내각의 상(장관)·군부의 상장(별 셋) 이상 300명 안팎의 인물 자료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당·정·군 간부 300인 인명록 분석
명단 제외자 중 83명 소재 파악 안돼
2012년과 비교하니 78명 새 이름
김정은, 평양 출신 선호 12명 → 32명

관료 숫자 줄이고 당 간부 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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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가 김정은 집권 1년차인 2012년과 올해 인명록을 비교한 결과 당시 323명 중 101명(31.2%)이 빠졌고, 올해 300명 중엔 78명(26%)이 새로 이름을 올렸다. 장성택 당 행정부장, 강석주 국제담당 비서, 김격식 인민무력부장 등이 사라진 대표적 인물이다. 그러나 나머지 83명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80여 명이 해임되거나 자리를 내놓고 새 인물로 교체된 셈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정은이 5년간 아버지 시대 사람들을 물리고, 잦은 엘리트 교체를 통해 자신과 함께할 사람들을 찾으면서 수습기간을 거친 결과”라며 “공개되지 않은 교체 인물을 고려하면 교체 폭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자료:통일부

자료:통일부

반면 김원홍 국가보위상(옛 국가안전보위부장, 한국의 국가정보원장)과 마원춘 국무위원회 설계국장, 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은 새로 등장한 인물이다. 김원홍은 북한 체제의 근간이 되는 정보 통제와 반체제 혐의자 색출 및 처벌을 담당하고 있다. 2012년 4월부터 김정은의 지근 거리에서 수시로 독대를 하고 있다 한다. 특히 강경파의 견제를 받아온 김양건 전 통일전선부장의 교통사고 등 석연치 않은 사고의 배후에 그가 있다는 관측도 있다. 마원춘은 김정은의 평양 현대화 구상을 집행하는 인물이다. 조용원은 태영호가 김정은의 비선실세로 지목할 정도로 북한 내 위상이 최근 올라갔다. 이 밖에도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선전선동부 부부장과 부인 이설주도 이번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당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시도를 했다고 평가해 왔다. 이 같은 평가는 이번 분석에서 관료의 숫자가 줄고, 당 간부들이 늘어나는 결과로 확인됐다. 실제 2012년 172명이던 내각과 국가기관 인물은 올해 138명으로 줄었지만 당 간부들은 86명에서 103명으로 늘었다. 당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당 국가 체제’ 구축을 시도한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김정일은 몇몇 참모와 협의를 해서 나라를 통치하는 직할체제 방식이었다면 김정은은 당의 기능을 정상화시켜 당 국가 체제를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엘리트들의 평균 나이는 5년 전에 비해 1.2세 늘어난 69.8세였다. 하지만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 엘리트들은 죽을 때까지 현직을 유지하는 특성을 고려하면 5년 전에 비해 1.2세 늘어난 건 오히려 인물 교체를 통해 3.8세 젊어진 것”이라 고 말했다.

북한 파워엘리트 평균 나이는 ‘칠순’

연령대별로는 70대가 83명으로 가장 많았고, 80~90대 인물도 38명이나 됐다. 양형섭(92) 정치국 위원과 김영남(89)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형식적 국가수반), 김기남(88) 선전선동부장은 고령임에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평균연령을 높였다. 김일성 주석의 동생인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 ( 97)은 엘리트로 분류됐지만 활동이 뜸하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체제실장은 “김일성 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은 바람막이 로 그대로 두고 본인과 실제로 호흡을 맞추는 인물들은 대거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자료:통일부

자료:통일부

김정은이 평양 출신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도 이번 분석의 특징이다. 평양 출신은 2012년 12명에서 32명으로 대거 늘어났다. 이 실장은 “정권수립 초기에는 지방 출신이 많았지만 70년대 이후 평양에서 교육받은 인물들이 고위직에 진출한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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