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민간주주 선택 받은 이광구, 우리은행 DNA 바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더 강한 은행으로 성장시켜 주주 여러분께 보답하겠다.”

민선 행장으로 첫 선출, 새 2년 임기 시작
전략·영업에 강한 정통 은행맨, 해외 경험도 갖춰
상업·한일 출신 갈등 해결 등 조직?인사 쇄신 속도
민영화에 걸맞은 실적 견인, 금융지주사 부활 숙제

25일 민영은행 시대를 이끌 새 행장에 내정된 이광구(60) 우리은행 현 행장의 첫마디는 과거와 달랐다. 우리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12조7663억원의 공적 자금이 들어가면서 국영은행의 길을 갔다. 정부가 행장을 임명했고, 경영진은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 경영목표 계약을 맺어야 했다. 임직원의 봉급도 제한됐다. 정부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임명한 행장의 첫마디는 대부분 “정부와 호흡을 맞춰 최상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 “공적자금 회수에 최선을 다하겠다” 등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이 행장은 최우선으로 민간 주주를 언급했다. “앞으로 (민간) 사외이사들과 긴밀히 협조해 성과를 내겠다”고 했다. 이번 행장 선임에 정부의 입김은 없었다. 과점 민간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로 구성된 임원후보추천위윈회(5명)의 뜻에 따라 행장이 선임됐다. 우리은행이 명실상부한 민영화 항해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우리은행 임추위가 이 행장을 민영은행의 행장으로 내정하면서 꼽은 건 “지난 2년 동안 이룬 민영화 및 실적”이었다. 이 행장은 2014년 처음 행장에 취임했다. 그는 2년 임기 안에 민영화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 목표를 달성했다. 연임에 성공하면서 이 행장의 새 임기는 2년이 됐다. 3월 24일 주주총회를 거쳐 새 임기가 시작된다.

이 행장은 전략·영업에 강한 정통 은행원 출신이다. 1979년 상업은행에 입행해 종합기획부·비서실·전략기획단 등 주요 부서를 두루 거쳤다. 미국 LA지점 근무를 시작으로 홍콩지점장, 홍콩우리투자은행 법인장 등을 역임해 해외 영업 경험도 풍부하다. 개인 고객을 끌어모으고 시류에 맞는 대면 채널을 확보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이다. 지난해 가입자 300만 명을 달성한 모바일 플랫폼 ‘위비(Wibee)’ 구축도 이 행장이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

그가 새 임기를 맞아 당장 풀어야 할 숙제는 조직 쇄신이다. 1999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돼 출범한 우리은행(옛 한빛은행) 조직은 18년째 두 은행 출신 간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로 몸살을 앓아 왔다. 행장직을 번갈아 가면서 맡고, 상대편 출신 수석부행장을 둬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논리가 강했다. 능력 위주로만 인재를 배치한 다른 시중은행들에 비해 조직 효율성이 떨어지는 부작용을 감수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주주들이 행장의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 어디 출신인가는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됐다. 이 행장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그는 내정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 “민영화된 은행에서 임기는 의미가 없다. 매 순간 열심히 하는 길밖에 없다. 공정한 인사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 방안으로 객관적 평가 기준과 인사원칙을 포함한 모범답안을 6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2년간 끌어올린 은행 실적을 계속 견인하는 것도 숙제다. 이 행장은 2014년 4000억원대였던 당기순이익을 2년 만에 1조3000억~1조4000억원대까지 끌어올렸다. 급속한 성장을 통해 민영화에 걸맞은 자산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 행장은 “당분간은 연 4~5%대 안정적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5%인 국제결제은행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매년 0.5%포인트씩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11월 해체된 우리금융지주를 다시 부활시키는 작업 역시 이 행장의 과제다.

우리카드·우리종합금융 등만 남기고 매각했던 자회사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새로 구축할지가 쟁점이다. 당장 필요한 게 증권사와 보험사 등이다.

하지만 은행의 민간 과점주주들이 증권사(한국투자증권·키움증권 등)와 보험사(한화생명·동양생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금융지주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과점주주들의 입김이 작용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더욱이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잔여지분(21.4%) 매각 작업도 지주사 전환과 맞물려 진행되기 때문에 금융지주화 작업이 진통을 겪을 수 있다. 이 행장은 “사외이사들은 과점주주를 대표하는 실질적 오너그룹이기 때문에 과거보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이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