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재개봉 영화 풍년이다. 지금 다시 챙겨 봐야 할 재개봉 영화만 추렸다. magazine M 기자들의 아주 사소하고도 애정 넘치는 추천사와 함께. ‘재개봉 영화 사용 설명서’라고 해 두자. 단순히 스크린에서 보는 편이 더 실감 나고 소리도 빵빵해서 좋다는 말은 안 한다.
‘마이 프레셔스’ 같은 판타지 3부작
피터 잭슨 | 일라이저 우드, 이안 맥켈런, 비고 모텐슨, 리브 타일러, 숀 애스틴
(*감독 | 출연 | 개봉 | 재개봉)
반지의 제왕:반지 원정대(이하 ‘반지 원정대’)
The Lord of the Rings:The Fellowship of the Ring | 2001 | 1월 11일
반지의 제왕:두 개의 탑(이하 ‘두 개의 탑’)
The Lord of the Rings:The Two Towers | 2002 | 1월 18일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이하 ‘왕의 귀환’)
The Lord of the Rings:The Return of the King | 2003 | 1월 25일
한 줄 스토리 세상을 어지럽히는 절대반지를 영원히 파괴하기 위해 떠난 반지 원정대의 장대한 모험담.
아주아주 사적인 추천사 J R R 톨킨이 쓴 원작 소설 속 판타지 세계관을 스크린에 옮긴 ‘반지의 제왕’ 3부작은 나의 ‘인생 영화’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보며 스스로 “축복받은 세대”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3부작 완성 후 15년 만에 다시 이 영화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니! 그것도 확장판으로 말이다. 확장판은 극장판에 비해 원작 특유의 디테일이 추가됐으며, 중간계의 화려한 풍광과 웅장한 전투 장면은 여전히 관객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한 프로도(일라이저 우드), 레골라스(올랜도 블룸) 등 반지 원정대의 활약은 과거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나를 흔든 그 장면 ‘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그 장면. 바로 ‘왕의 귀환’에 등장하는 로한 기마대 돌격신이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적진으로 나아가는 로한의 기수들. 진격하는 기마대의 비장한 모습과 함께, 음악 ‘더 필즈 오브 펠렌노르(The Fields of Pelennor)’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명작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확장판이다 보니 상영 시간이 어마무시하다. ‘반지 원정대’는 228분, ‘두 개의 탑’은 235분, ‘왕의 귀환’은 263분이다. 세 편을 합쳐 총 726분의 대서사시로 재탄생한 것. 각각의 상영 시간이 4시간에 달하지만 인터미션(중간 휴식 시간)은 없다. 확장판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제대로 즐기려면 관람 전 화장실 이용은 필수.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가장 아름다운 뜀박질
스티븐 달드리 | 제이미 벨, 줄리 월터스 | 2001 | 1월 18일
한 줄 스토리 탄광촌 11세 소년 빌리(제이미 벨)의 발레리노 도전기.
아주아주 사적인 추천사 어느덧 나이 30줄에 접어든 제이미 벨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자, 대표작이자, 인생작이자, 유일한 주연상 수상작이자, ‘리즈 시절’이 담긴 영화. 2001년 겨울, 그러니까 고3 때 극장에서 본 ‘빌리 엘리어트’는 유난히 싸늘했던 그해 겨울에 만난 가장 따뜻한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빌리는 민소매·반바지 차림으로 정말 하염없이 뛰어다닌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찾으려 뛰고, 발레 ‘턴(Turn)’ 동작을 성공한 게 기뻐서 뛰고, 아빠에게 혼난 것이 서러워 뛰고, 탭 댄스를 추면서도 뛴다. 펄펄 끓는 듯한 어린 시절의 열망, 내내 붉게 상기돼 있던 소년의 얼굴, 대책 없이 화창하던 탄광촌 하늘까지. ‘빌리 엘리어트’의 그런 따스한 온도가 마냥 좋았다. 빌리는 춤을 추면 “날고 있는 새가 된 기분”이라 말한다. 이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도 빌리는 침대 위에서 점프한다. 날갯짓하는 새처럼.
나를 흔든 그 장면폴짝폴짝 점프하는 빌리를 슬로 모션으로 보여 준 첫 장면. 힘차고도 우아한 ‘역대급’ 오프닝신이다. 영국 록 밴드 티 렉스의 ‘코스믹 댄서(Cosmic Dancer)’는 거들 뿐.
명작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전 세계에서 두루두루 욕먹은 ‘판타스틱 4’(2015, 조시 트랭크 감독) 다시 보기. 헛심 쓰는 제이미 벨을 보고 있으면, 당장에라도 ‘빌리 엘리어트’로 힐링하고픈 욕구가 솟는다.
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아무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주룩
고레에다 히로카즈 | 야기라 유야, 키타우라 아유, 키무라 히에이 | 2005 | 2월 9일
한 줄 스토리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이야기.
아주아주 사적인 추천사 무작정 극장으로 향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2005년 서울 종로에는 ‘씨네코아’라는 작은 극장이 있었는데, 이곳에선 당시 작품성이 빼어난 일본 영화를 자주 상영하곤 했다. ‘아무도 모른다’도 그런 영화 중 하나였다. 그날은 재수 학원을 빼먹고 씨네코아에 갔고, 아무 정보도 없이 이 영화를 봤다. 마음이 미어지는 이야기였다. 아이 넷을 두고 집 나간 엄마, 세 동생을 보살피는 소년 아키라(야기라 유야). 수도와 전기가 끊긴 집에서 아이들은 어떻게든 살아가려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토록 슬픈 풍경을 다큐멘터리처럼 한발 떨어져 관찰하듯 담아냈다. 아이들이 관객의 눈에 그저 분노와 연민의 대상으로 비치지 않도록. ‘아무도 모르게’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고레에다 감독이 포착한 건, 비극 속에 반짝이는 생(生)의 감각이었다.
나를 흔든 그 장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이 거기 있었다. 사랑하는 형제에게 “사요나라(さようなら)”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아이들의 헛헛한 눈빛에 눈물이 주룩주룩.
명작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왈칵 터지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든 장면이 후반부에 집중 배치돼 있다. 무조건 손수건을 챙길 것.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어떤 사랑
스티븐 달드리 | 케이트 윈슬릿, 랄프 파인즈, 데이비드 크로스 | 2009 | 1월 19일
한 줄 스토리 1958년 독일, 30대 여성 한나(케이트 윈슬릿)에게 책을 읽어 주며 그와 사랑을 나눴던 10대 소년 마이클(데이비드 크로스). 그가 10년 뒤 법정에 선 한나를 목격하고 느끼는 혼란, 그 감정에 대하여.
아주아주 사적인 추천사 양파 같은 이야기다. 마이클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자, 한나의 실체를 통해 어떤 진실을 훔쳐보려는 노력이며, 인류의 죄에 대한 사유이기도 하다. 10년 전 홀연히 사라진 한나를,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 감시원들을 재판하는 자리에서 다시 보게 된 마이클. 그는 너무 고통스러워 한나를 계속 바라보지도, 그렇다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도 못한다. 그 눈빛이 오만 가지 말을 한다.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를 처음 봤을 때는 그 모든 의미가 흐릿하게 느껴졌는데, 다시 보니 이 영화가 얼마나 깊은 인간의 심연을 두드리고 있는지 손톱만큼이나마 더 알 것 같다.
나를 흔든 그 장면 30년 만에 다시 만난 마이클(랄프 파인즈)에게 한나가 “(책은) 여전히 누가 읽어 주는 게 더 좋아”라고 말할 때, 두 사람의 눈동자 그리고 그들 사이에 쌓인 그 하염없는 공기들.
명작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서점에 들르자.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