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敵將도 잘쓰면 공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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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대중(DJ) 대통령은 당선 직후 구조조정의 총책임자로 이헌재(李憲宰)를 발탁했다. 이헌재는 DJ의 당선자 시절엔 비상경제대책위원회 기획단장을 맡았고 초대 금융감독위원장과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DJ정권 전반부의 구조조정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이헌재는 DJ 사람이 아니었다. DJ의 측근들은 그를 당시 공동정부의 한 축이었던 자민련 쪽 사람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헌재는 자민련 사람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는 1997년 대선에서 DJ와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이회창 후보 진영의 정책 브레인이었다.

DJ는 적진(敵陣)의 장수를 핵심 요직에 중용한 셈이다. DJ 주변에선 이헌재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말들이 많았다. 물론 그를 헐뜯는 이야기다. 그래도 DJ는 2년4개월 동안 이헌재에게 중책을 맡겼다. 왜 그랬을까.

DJ는 이헌재를 천거받으면서 그가 쓴 경제위기 해법에 대한 보고서를 보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여기서 DJ가 주목한 대목은 '(이대로 가면)내년(98년) 4월께면 실업사태로 소요가 일어날 것'이란 부분이었다.('DJ정권 5년의 경제실록, 금고가 비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DJ가 직면한 최대 과제는 외환위기 극복이었다. 나라가 '단군 이래 최대의 위기'에 빠진 마당에 내 사람, 남의 사람을 따져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난국을 헤쳐갈 비법과 묘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내 사람'가운데 적임자가 없으면 '남의 사람'이라도 끌어다 쓸 수밖에 없었다.

이헌재는 비록 이회창 진영에 속했었다고는 하지만 실은 정파나 이념과 관계없는 '구조조정의 전문기술자'일 뿐이었다. DJ는 이헌재란 전문기술자를 데려다 씀으로써 환란의 고비를 넘겼다. 만일 DJ가 이헌재에게 '상대 진영 사람'이란 딱지를 붙여 퇴짜를 놨다면 사정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DJ가 마냥 합리적인 인사 탕평책(蕩平策)을 편 것만은 아니었다. DJ정부의 다른 요직들은 대체로 '내 사람' 위주로 짜였다. 여기서 내 사람의 기준은 '출신지역'이다. 어떤 해외 공관은 아예 공사부터 사무관까지 업무라인 전체가 통째로 특정지역 출신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관가에선 '표준말'이 바뀌었다는 농담이 무성했다. YS정권 때의 실세 요직에 앉았던 사람들은 투박한 부산 사투리를 썼는데 정권이 바뀌자 걸쭉한 호남 사투리가 주류를 이루었다는 우스갯소리다.

이렇게 지역연고로 발탁된 인물이 능력이 있고, 또 일이 제대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지나온 경험은 그런 식의 인사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걸 보여준다. 과거 정권에서 '내 사람'의 기준이 출신지역이었다면 노무현 정부의 잣대는 '코드'다. 지역주의는 많이 희석됐지만 그 자리엔 '코드맞추기'가 대신 들어섰다.

문제는 코드 맞추기도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재를 배치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요즘처럼 복잡해진 세상에선 '내 사람'만으로 정부의 중요한 자리를 다 채우기가 쉽지 않다. 자연히 사람과 자리 사이에 괴리와 균열이 생긴다.

'내 사람'중심의 코드 맞추기 구조에서는 무리와 다른 의견을 내기 어렵다. 이 같은 조직은 똘똘 뭉쳐 외부의 적과 대항할 때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나 평상시 다양한 정책 현안을 조율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효율이 떨어진다.

청와대가 곧 비서실을 개편하리라는 소식이다. 조만간 개각의 수요도 생길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내 사람'중심의 편협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종수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