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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침묵의 추격자, 인내의 화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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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16강전 2국> ●·이동훈 8단 ○·커제 9단

8보(82~91)=83은 요소. 이곳은 쌍방 세력 확장의 접점이기도 하지만 흑의 처지에선 대마의 안전을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84는 예상된 껴붙임. 귀에서 흑의 집이 만들어지는 것을 저지해야 중앙을 향한 흑 대마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이동훈은 침묵의 추격자. 형세가 불리하다고 해서 함부로 과격한 속도전을 결행하는 타입이 아니다. 한발, 한발 조금씩 따라붙으면서 최적의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인내의 화신이다. 그런 성향 때문에 대선배 이창호와도 종종 비교되곤 한다.

좌상귀 쪽 85, 86의 교환으로 한 호흡 숨을 고른 뒤 좌하귀의 약점을 보강한 87도 한가하게 보일 만큼 침착하다. 88은 외면할 수 없는 큰 곳. 기다렸다는 듯 89로 하나 밀어두고 하변 91로 찔러간다. 패의 ‘뒷맛’이 남아있던 곳. 앞서 두텁게 올라서 둔 83도 패를 결행하기 위한 사전 준비다. 검토실에선 ‘참고도’ 백1 이하(흑4…▲)의 진행을 그려 보이며 ‘승부가 걸린 패’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만일, 그렇다면 커제는 왜 화약고 같은 이곳을 보강하지 않았을까.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커제도 여기서 패가 발생하리란 것쯤은 읽고 있었다. 맞다. 패의 결과에 대한 판단이 다른 것이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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