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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하라」는 폭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노사분규로 세상이 어수선한 가운데 인천의 어느 봉제공장에서 벌어진 집단 난동사건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한다.
적지않은 무리의 청년들이 새벽3시 여성근로자들의 기숙사에 밀려 들어와 무차별 집단폭행을 가했다. 왜 노조에 가입하지 않느냐, 함께 농성하라는 행패였다. 이들은 회사 정문을 밀치고 난입, 각목과 공구를 휘두르며 기둥을 닥치는대로 부수는가하면 기숙사에서 잠자던 여성근로자등 41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으로 몽둥이 세례를 받은 종업원들은 『우리의 생명을 보호해 주세요』라는 피킷을 들고 경찰서 앞에서 농성을 벌이기까지 했다. 한밤중의 상황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짐작할수 있다.
이 회사는 종업원 3백65명 가운데 3백30명이 여자종업원이며 지난달 27일 30여명이 노조를 결성, 임금인상 등을 요구해왔고 나머지 종업원들은 이에 동조하지 않고 정상조업을 해왔다고 한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괴청년 1백여명의 정체가 궁금하다. 남자 직원은 불과 35명이라는데 1백수십명의 청년들은 누구인가.
그렇지 않아도 노사분규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외부 불순세력의 개입을 우려하는 소리가 기업이나 당국은 물론 세간에서도 높다.
노조는 원래 근로자의 자주적인 의견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노동조합주의」노조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외부로부터의 지배와 간섭, 또는 감독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주의(트레이드 유니어니즘)란 자본주의 사회제도를 받아들이는 가운데 근로자의 생활조건 개선을 위한 경제활동에 목표를 두고 있다. 따라서 근로자의 자주적 의견이 존중되며, 근로자는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노조의 가입 여부를 결정할수 있다.
근로자는 누구나 노조에 가입해야하는 공산주의식 노조운동과는 엄격히 구별되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과 같은 노조운동이 활발한 나라의 노조 가입률이 불과 36%인 것은 근로자의 「자주적 의견」이 존중된 결과다.
이런 사리를 접어 두고라도「내뜻」에 따르지 않고 「내 편」이 되지 않는다고 상대를 윽박지르고 주먹까지 휘두르는 것은 바로 비민주 독선의 표본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것 하지 말자고 민주화를 외치고, 헌법을 고치며, 우리 사회가 온통 진통을 겪고 있지 않은가.
노조운동 역시 꼭 마찬가지다. 먼저 근로자들의 자유 의사가 존중되어야 하고, 그런 전시에서만 이 노조운동은 가능하다. 노조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폭력을 휘두르기전에 노조 자신이 신뢰를 쌓아야 하는 것이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노사분규의 양상도 더러는 비민주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맹목적인 극열로 치닫고 있는 경우도 본다. 농성에 가담하지 않는다고 폭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노사타협이 이루어졌다가 어이없이 깨지는 예도 있었다.
이것은 타결의 내용이 무엇이었는가를 따지기에 앞서「민주적 타협」기술의 미숙을 먼저 한탄해야 옳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민주적 경험축적의 부족, 관행의 미비로 공연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것도 같다.
민주적 소양은 정치무대에만 국한된 물이 아니며 경제, 문화, 사회, 그리고 우리의 생활 속속들이에서 빛을 내야 한다.
오늘의 노사분규는 바로 그런 훈련을 값비싸고 고통스러운 대가를 주고 치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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