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진실 밝히되 가해자는 용서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용서가 전제돼야 역사의 진실을 밝힐 수 있다."

24년간 인도네시아의 철권통치를 받으며 많은 주민이 인권유린을 당했던 동티모르가 과거사 청산과 대화해를 제안했다. 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 대통령은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통치하면서 벌인 인권유린 실태를 담은 '진실과 화해위원회' 보고서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20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동티모르의 '진실과 화해위원회'가 3년간 조사해 작성한 것이다.

구스마오 대통령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인도네시아 통치기간에 벌어진 각종 살인과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또 인권유린 행위의 책임을 물어 인도네시아 관계자를 국제사법재판에 회부하는 데도 반대한다고 했다. 그는 "동티모르의 정의는 1998년 인도네시아의 철권통치자 수하르토가 몰락해 동티모르에서 철수하면서 실현됐다"면서 "99년부터 2005년까지 국제사회에서 동티모르에 10억 달러를 지원한 만큼 인도네시아의 금전 보상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에 맞서 반평생 동안 무장독립 운동을 벌였던 그는 "피해자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써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2500페이지에 이르는 보고서에 실린 인권유린 실태는 예상대로 충격적이다. 이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통치 기간인 75년부터 99년까지 동티모르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10만2800명이 사망했으며 이 가운데 70%가 인도네시아 보안군이나 민병대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인도네시아 민병대는 식량을 불태우고 식수를 오염시키기 위해 네이팜탄과 화학무기를 사용했으며, 일부 희생자를 산 채로 불태우거나 땅속에 묻는 등 끔찍한 살상행위를 자행했다고 보고서는 적고 있다. 인도네시아군과 민병대는 99년 동티모르에서 철수하면서도 1500여 명을 살해하고 동티모르의 산업기반 시설 등을 파괴했다. 마지막까지 보복활동을 벌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스마오 대통령은 새로운 방법의 과거사 청산을 제시했다. 사실 피해자 유족들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음에도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금까지 동티모르 인권유린의 책임을 물어 단 한 명의 자국 군인도 처벌한 적이 없다. 동티모르 내에선 구스마오의 이런 '화해와 용서' 정책이 결국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에게는 정의를 되찾아주지 못하면서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만 허용할 것이라는 원성도 나온다. 그러나 영국 BBC방송은 "구스마오 대통령은 미래의 통합을 위한 화해의 정치라는 세계사적 실험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동티모르와 구스마오=동티모르는 말레이 열도의 티모르섬 동반부에 위치한 신생국가다. 유럽과 일본 제국주의, 인도네시아에 번갈아 식민지배를 당했다. 78년 당시 동티모르를 지배하던 포르투갈이 식민통치 종식을 선언하고 독립운동 조직인 프레틸린이 내전에 승리하면서 그해 11월에 '동티모르 민주공화국' 건국을 선포했다. 그러나 새 나라를 수립한 지 아흐레 만에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권이 이 나라를 강점했다.

70년대 포르투갈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펼쳤던 구스마오는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지배한 뒤인 81년 민족해방군 총사령관에 선출된 뒤 대 인도네시아 무장독립투쟁을 벌였다. 92년 체포돼 연금당했으며, 99년 9월 동티모르 유혈사태를 계기로 자유의 몸이 됐다. 수하르토 정권 붕괴 뒤 99년 인도네시아군이 철수했고, 2002년 4월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구스마오가 선출되면서 동티모르는 수백 년에 걸친 식민지배의 족쇄를 풀고 독립했다. 구스마오는 분쟁 종식과 평화 정착, 인권 옹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유럽연합(EU)이 수여하는 사하로프 인권상과 제1회 한국 광주인권 상을 수상했다.

박소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