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꿈(36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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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병원에 자주 가고 있니?』
『걱정마 엄마. 다 건강하대.』
『애 너무 키우지 말아. 낳을 때 고생한다.』
둘은 천천히 걸었다. 아파트 앞에 늘어서 있는 승용차의 차체에 불빛이 번들거렸다. 그 차들이 말하는 거 같았다. 오늘 하루도 끝났습니다.
『애 키우는 게 뭐야? 애는 낳아야 키우는 거 아닌가?』 『아이구, 이런 것들이 애를 낳겠다고….』
『엄마는 애 낳아 보고 결혼했나 뭐. 요새 여자들 그래도 옛날 사람들보다 더 더 잘만 기르던데.』 『터진 입이라구 말은 잘한다.』
『바로 그거야 엄마. 그러니까 나랑 살면서 이것저것 가르칠 건 가르치고 도와도 주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 그렇다고 이민간 사람들이 애보고 집 보라고 친정 엄마 데려오는 식은 아니란 말야. 엄마 부려먹자는 거 아니라니까.』 어린이 놀이터 앞의 시계탑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쉽니. 집도 정리해야지…내 살림살이는 또 어쩌구.』 『그거야 엄마만 허락하면 우리가 다 알아서 해드릴 거 아녜요.』 『에이구 모르겠다. 어디 한번 생각이나 해보자.』
『약속하는 거야 엄마. 생각해 보겠다구 약속하는 거야.』 『아니 젊은것들이 저희끼리 살라는데 왜 늙은이를 데려가겠다고 이 성화인지 모르겠다.』 『나이 든 사람의 지혜와 인생에 대한 안목을 배운다, 내가 뭐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해야 엄마 기분이 좋아지겠어? 그렇다면 정식으로 말할게, 엄마 모시고 살면서 장 담그는 거며 이불 빨래하는 거며 그런 거…그 동안 못 배운 살림도 배우고 그랬으면 좋겠어 엄마.』 『하여튼 모르겠다. 나도 좀 생각해 보마.』
영주가 걸음을 멈추며 목소리를 장난스레 바꾸었다.
『우리 엄마 정말 웃겨. 아니 다른 사람들 보니까 모셔가질 않는다구들 자식 새끼 길러 봐야 무슨 필요냐, 저희들 살만하면 부모 같은 간 몰라라 하니 이래서야 늙은이들 서러워서 어찌 살겠느냐, 뭐 다들 드러나 본데…이건 뭐람. 모셔가겠다는 데도, 나 차암.』 그때였다. 아파트 입구의 경비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불빛 속으로 불쑥 걸어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채훈이었다.
『아니, 어디 갔다가 이렇게 늦었어요?』
모녀가 앞으로 나서면 물었다.
『채훈씨?』
『아니 이런.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나보군.』
채훈이 인사를 하고 나서 들고 있던 담배를 껏다. 채훈의 등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며 영주가 속삭였다. 다 잘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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