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군 행적·피랍경위 오리무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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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빈=홍성호특파원】오스트리아 빈주재 한국대사관(대사 이시용) 은 11일 이재환군 납북사건에 관해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이군의 행적 및 피랍경위 등에 대한조사에 착수하는 한편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교민·유학생·일시여행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다.
휴가중이던 이대사는 휴가를 중단, 2일 귀임했으며 오스트리아 당국에 이군행적수사의 적극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군은 단기여행자로 현지공관에 입국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전모를 캐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대사관측은 그러나 이군이 미국을 떠나면서『빈 음악제에 간다』고 말했다는점 등을 참고해서 여행사·숙박업소·교민식당 등 이군이 들렀을 만한 곳을 중심으로 탐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워싱턴=한남규특파원】북한에 강제 납치된 것으로 발표된 이재환군은 미국유학생활을 비교적 외롭게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군이 공부하던 미MIT대「슬로언 스클」(경영대학원) 의 한국인 유학생들은 대부분 이군을 한 두번 밖에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신변동향을 갈 알수 없다고 말하고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 돌아다니지 않는 얌전한 학생이었다고 전했다.
이 대학원에서 5년반째 박사학위과정을 밟고있는 이순철씨 (32)는 작년 8월 과사무실로 찾아와 첫인사를 나누고 10월에는 컴퓨터사용법을 가르쳐달라고 방문해 얘기를 나눈적은 있지만 그후로는 저녁한번 같이 나눈적이 없어 생활주변을 알수 없었다고 11일 말했다.
학문에 관한한 이군은 식견이 매우 분명하여 기존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조리정연하게 표현하고 학교수업도 주어진 과제만을 챙기는것 보다는 광범하게 훑어나가는 지적인 학생이었다고 이씨는 전했다.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경영을 주전공, 경제학을 부전공으로 했던 이군은 수강과목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다른 과목을 여러 가지 청강해보고 결정하는 코스 쇼팅을 많이 한점으로도 그의 진지하고 적극적인 학문자세를 알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대학원 학생인 강석현씨 (36) 는『슬로언 스쿨에 한국학생이 별로 없는데다 이군과 모두 나이차이가 많아 함께 지낸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군의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는 사실도 이번 사건발생 이후에 처음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평소 유학생간의 왕래가 없었던 점을 드러냈다.
강씨는 이군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지난6월말 뉴욕의 한국총영사관 등에서 이군 행방을 찾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어렴풋이 알았다고 말하고 그러나 강씨를 포함한 다른 유학생들이 그때쯤 그가 평양에 있다고 나돌기 시작한 소문을 별로 믿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총각유학생들은 여름방학이면 소식없이 사라졌다 한참만에 새까맣게 타가지고 나타나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이군은 학과장「레서든 교수도 입학을 흐뭇해할 정도로 전형적인 모범학생인데다 강씨가 받은 인상으로는 공부만 하는,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린 학생이어서 평양얘기는 전혀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씨의 부인은 이군이 운동을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을 즐긴것 같다고 말하고 스케이트장과 수영장에서 혼자 운동하는 것을 몇차례 목격했다고 전했다.
이순철씨에 따르면 5월 이후 이군의 학교 우편함에는 교수의 과제물 지시등 서신이 가득차 있는데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군이 5월까지 기거하던 아파트는 외부에서 전화를 걸어도 단선됐다는 녹음된 교환수 목소리밖에는 들리지 않고 있는데 방 열쇠도 다른사람에게 맡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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