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개입막아야 수습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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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걷잡을수 없이 번지고 있는 노사분규. 과연 수습할수 없는 것인가. 노사협의로 한때 주춤했던 분규가 탄광·운수등 국가기간산업을 뒤흔들고 전국 공단의 전업종으로 번져 국민경제를 위협하자 이같은 노사분규가 왜 수습이 안되는지, 그뿌리를 캐내 근본적인 치유책을 강구해야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있다.
노동부나 사용주들은 대부분 「6·29선언」이후 사회 모든 분야의 민주화 열기가 노사분규를 부추기고있다고 해석하고 있으나 그동안 정치·사회적 제약때문에 억눌려 왔던 근로자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일부 외부세력의 개입도 지걱되고 있다.
그러나 노사분규의 현장에서 드러난 가장 큰 쟁점은▲어용노조 시비로 기존노조에 대한 근로자들의 불신▲만족할수 없는 임금인상▲근로기준법상 혜택을 받지 못하고있는데 대한 불만으로 집약되고있다.
◇기존노조 불신=최근 노사분규의 가장 큰 정점은 무엇보다 기존노조에 대한 근로자들의 누적된 불신에서 비롯되고 있는게 특징.
10개 요구사항를 내걸었던 부산국제상사 근로자들의 경우△어용노조 퇴진△노동조합 비공개△조합활동공개△노조위원장 직선등 노조관련이 4개항이나 되고 울산 동양나일론과 태광산업은 첫번째 요구사항이 어용노조퇴진-민주노조인정이었다.
또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의 노사분규도 새로 결성된 노조가 회사측과 가까운 간부들이 중심이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반발한데서 비롯됐다.
이와달리 기존노조가 조합원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는 창원 한국중공업이나 대우중공업 인천·창원공장등은 비교적 쉽게 수습되거나 수습 기미를 보이고 있어 대조적.
그러므로 이번 노사분규의 해결은 근로자들이 직접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수 있는 대표를 뽑아 이들은 믿고 그 대표들을 통해 요구조건을 관철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업주들은 소위 어용노조시대를 청산하고 노사협의를 통한 건전한 노사대화가 이뤄질수 있도록 뒷받침하는것이 관건이라 할수있다.
◇임금 인상=노사분규의 또한가지 폭발원인은 기업주들이 그동안 임금 인상·근로자 복지등에 지나치게 인색했던 점을 들수 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고졸 군필 초임수준이 15만7천여원으로 동종업계인 대자조선 (16만1천원), 삼성조선·대한조선공사 (각각 19만여원) 보다 크게 떨어진데다 3월의 임금인상에서도 인상률 3·3%로 울산공단내 평균 인상률 7%에 훨씬 미달된 실정.
태광산업도 고졸 초임 14만여원, 연간 상여금 남자3백40%, 여자2백20%로 동업종인 선경·코오롱에 비해 15∼20%씩 낮았던 것.
이와는 대조적으로 전자업종은 최근 호황에 인력난까지 겹쳐 평균임금이 3만∼4만원씩 오르는 바람에 대표적인 노동집약산업이면서도 노사분규가 없는 것이 특징.
기업주들은 근로자의 희생 위에 기업 성장을 꾀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깨닫고 기업의 과실을 기업주·근로자가 나눠 가져야 한다는 이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근로자들도 국가경제나 기업주의 「발전을 위한 재투자」란 입장을 고려, 한꺼번에 2∼3배씩 인상을 요구하는 무리없이 서로 한걸음씩 양보해야 한다는게 중론이다.
서울대 조순교수 (경제학)는『기업측은 근로자들의 처우개선과 권익보호에 솔선해 나서야하고 근로자들도 일방적 주장만을 펴서는 안되며 피차 양보로 타협하는 길밖에없다』고 말했다.
조교수는『현재 벌어지고 있는 노사분규사태는 산업민주화의 불가피한 진통인만큼 인내를 갖고 풀어야하며 쾌도난마식 일거해결은 기대할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처우개선=지금까지 노사분규에서 드러난 두드러진 근로자 불만은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근로자 권익보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과 열악한 작업환경 개선요구등이었다.
근로기준법상 초과근로는 정상근로 임금의 1백50%, 야간작업은 2백%, 휴일근무는 2백50%의 임금을 지급토록 규정되어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
또 생산직과 사무직간에 임금 걱차는 물론 작업복·모자등의 색깔을 다르게 하는등 인간적인 차별대우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이밖에 작업장 안에 에어컨·선풍기등 시설이 없고 구내식당의 질이 떨어진다든지, 광산업계의·안전장화·방진 마스크 및 필터의 지급량을 늘리도록 요구하는등 작업환경개선요구도 많았다.
또 시내버스업계의 분규는 3년전부터 안내양제를 폐지해 노동 강도가 강화된데다 1일 2교대제로 노동시간이 단축돼 실제로는 임금이 감소된데 따른 불만이 배경에 깔려 있다.
이같은 작업환경이나 복지시설 개선 문제는 근로자들의 건강·생계와 직결되어었으나 그동안 등한시되어왔던 점을 인정, 분규가 시작되면서 기업주들이 대부분 근로자들의 요구조건을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부세력 개입=노사분규가 수습되지않고 있는 큰 이유중의 한가지는 외부세력이 노사분규에 개입해있기 때문으로 볼수있다.
노동부 분석에 따르면「6·29선언」이후 지난해11월 해산명령이 내려졌던「서노련」「인노련」등 14개 재야노동단체의 노동운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
특히 서울·인천·성남·광주·울산·전주·부산등 대도시의 경우 위장취업 해고근로자들이「해고근로자복직투쟁위원회」를 결성, 복직운동과 함께 현직 근로자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검찰·경찰에 따르면 85년 대우자동차 노사분규이후 7월말까지 전국 4백30개 사업장에서 적발된 위장취업자는 모두 8백30명. 업종별로는 금속이 2백57명으로 가장 많고▲전자 2백14명▲섬유 1백57명▲기타 2백2명의 순이다.
이들은 그동안 정부의 공권력발동으로 지하에서 활동하다 6·29선언이후 공권력이 느슨해지고 심지어 선거까지 의식해 당국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많은 위장취업 근로자들이 노사분규에 공공연히 개입, 배후조종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
부산 국제상사와 현대그룹 일부 관계회사가 외부세력의 개입으로 노사분규가 장기화되고 있는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서울대 송병낙교수(경제학)는『체제변혁을 기도하는 급진적인 세력은 엄중경계해야 할것』이라고 말하고『일본에서도 2차대전후 노동운동이 활성화된 초기에는 사회주의 사조의 영향으로 과격한 양상을 보였으나 50년대초반부터 이들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곧 타협을 통해 복지를 추구하고 분배와 함께 생산성향상·경쟁력제고의 능률과 성장을 중시하는 일본형노동운동이 정착했다』고 지적했다. 송교수는 이같은 일본형모델이 파업으로 분배추구에 치중하는 영·미형 노동운동보다 바람직스럽다고 설명하고 우리도 그같은 모델을 추구할것을 노사쌍방에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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