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 경쟁은 절대평가로 완화하고 선행 사교육은 개별학습으로 잡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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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호 10면

겨울방학이다. 방학은 학생들에게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학년이나 학교로 진학하게 될 시기를 맞아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하는 기간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정규 학기가 진행될 때보다 방학이 되면 고민이 더욱 깊어진다.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장점을 더 살려주기 위해 학원을 보내야 할지 아니면 과외를 시켜야 할지 걱정한다. 그래서 겨울방학은 사교육에 대한 관심과 의존이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2015년 공식 사교육비 총 규모는 17조8000억원으로 그 규모가 막대하다. 이처럼 사교육비 부담이 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교육 분야에서 이 문제는 입시 경쟁과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함께 붙어 다녔다.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다양한 정부 정책과 정치권의 공약이 나왔으나 실질적으로 사교육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사교육이 발생하는 원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사교육은 교과와 관련해 ‘제도에 의해 유발된 불필요한 사교육’으로 규정해 볼 수 있다. 불필요한 교과 중심의 사교육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상대평가로 인해 과열된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이루어지는 ‘경쟁형 사교육’이고, 둘째는 학교의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필요로 하는 ‘학습보완형 사교육’이며, 셋째는 학교교육의 진도보다 앞서가려는 선행의 욕심에서 유발되는 ‘선행형 사교육’이다.


경쟁형 사교육은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대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교육적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다. 학교의 내신 평가와 대학 진학을 위한 수능시험 등은 엄격한 상대평가에 기반하고 있다. 내신 평가는 학교의 구성원이나 학습 내용의 수준과 상관없이 상대적 서열을 평가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상급학교 진학에 활용되고 그 이후에도 평생 동안 기록으로 남게 된다. 수능시험도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는 전국 단위의 엄격한 상대평가를 실시해 순위를 매기고 있다.


이러한 경쟁형 사교육은 제도적 개선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교육은 서열을 매기기 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필요로 하는 인재 선발의 기능이 학교의 기본적인 교육적 기능을 훼손하고 있다. 서열 매기기로 인한 경쟁은 과도한 사교육을 유발할 뿐 아니라 학습의 실패자를 양산한다. 정해진 교육과정의 범위 내에서 짧은 시간에 정확한 답을 재생하는 능력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은 반복학습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인간의 기억력에 의존해 지식을 저장하고 인출하는 능력은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그 중요성이 더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 풀기와 암기를 위한 반복학습에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크나큰 손실이다. 교육과정을 최소 성취 수준으로 줄이고, 도달해야 할 성취기준을 설정해 절대평가를 실시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학교의 획일화된 진도에 맞추지 못해 유발되는 학습보완형 사교육과 선행형 사교육은 맞춤형 학습체제의 도입으로 해결해야 한다. 한국 학교의 모든 교실에서는 정해진 국가교육 과정의 내용을 정해진 시간 내에 가르쳐야 하는 소위 ‘진도 나가기’가 진행되고 있다. 산업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공급자 중심의 주입식 교육이다. 학생들은 정해진 진도에 맞춰 학습을 해야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속도가 늦은 학생과 빠른 학생의 격차는 더 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학습자 맞춤형 교육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그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아직 실현되지는 못한 상황이다.


인공지능 기술과 4차 산업혁명의 다양한 기술은 학습자 맞춤형 교육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학교에서 개별 학생에 대한 맞춤형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획일적 교육으로 인해 유발되는 학습보완형 사교육과 선행형 사교육은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선 맞춤형 학습이 이루어지는 학교를 ‘미래 학교’라고 하지만 이미 외국에서는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온라인 학습 사이트인 칸 아카데미(Khan Academy)를 설립한 샐먼 칸(Salman Khan)은 2014년 칸랩 스쿨(Khan Lab School)의 문을 열고 이를 운영하고 있다. 칸랩 스쿨은 초등과 중등으로 구분한 무학년제를 표방하고 칸 아카데미 등 온라인 교육을 활용한 맞춤형 학습을 구현하고 있다. 전적으로 학생 개개인의 흥미와 수준에 맞춰 학습을 하고 있으며 평가를 하지 않는다. 오프라인으로 교실에서는 프로젝트 학습을 통해 창의성 등의 고차적 인지능력과 사회성을 동시에 기르도록 하고 있다. 구글(Google)의 직원들이 2013년 설립한 알트 스쿨(Alt School)은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반이 편성되고, 맞춤형 학습을 실시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활동이 기록되도록 하는 수행평가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변화의 핵심은 맞춤형 학습을 기반으로 협력학습을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칸랩 스쿨과 알트 스쿨의 맞춤형 학습에 활용되는 온라인 학습은 여전히 일방향 교육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학습자의 학습 수준과 속도에 맞춘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 가상현실, 증강현실과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학습은 학습자의 학습 수준과 속도에 맞춘 교육을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교육을 대체할 인공지능 수학 선생님 피타고라스를 상상해 보자. 가상현실로 등장하는 인공지능 피타고라스 선생님이 아이에게 말한다. “저번 시간에 어디까지 배웠지? 오늘은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대해 공부해 볼까?” 피타고라스 선생님은 아이의 수준과 학습 속도에 맞춰 대화식으로 내용을 설명하고, 아이가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해 답을 해줄 수 있다. 과목마다 인공지능 선생님이 아이를 지도하면 사교육은 거의 필요하지 않게 된다. 인공지능 선생님의 운영 비용은 정부가 보조해 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학교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고 사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 사회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높은 파도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신기술의 파도를 타고 학교교육의 혁신을 통해 사교육이 필요 없는 맞춤형 교육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실행해야 할 시점이다.


정제영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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