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노사분규 이렇게 푼다|스페인-민주화위해 요구자제|˝허리띠 졸라매야 전국민이 산다〃|압제 끝나자 격렬 분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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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프랑코」독재가 끝난후 10여년동안 스페인은 4O년 압제 아래 노동권이 억눌렸던데 대한 반작용으로 격렬한 노사분규를 겪었다. 민주개혁 초기에는 그 열도가 민주화과정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까지 높아졌으나 경제안정을 원하는 대다수 스페인 국민들의 여론이 노사에 다같이 작용, 이제는 서구수준의 합리적 분규해소 메커니즘이 정착되었다.
상당부분의 민간기업이 국유화과정에 있는 사회주의국가 스페인이 노사 분쟁을 처리하는 방법은 별다를게 없다. 「펠리페·곤살레스」수상이 내세우는 『전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일자리를 유지할수 있고 물가도 안정시킬수 있다』는 국민적 호소를 노동자들이 이해하는 선에서 해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난4월 「곤살레스」의 스페인은 파업으로 인한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았었다. 스페인의 각종 교통기관과 기간산업체가 총파업, 전국이 마비되는 「검은 금요일」사태다. 노동사회당 (PSOE)의 집권2기를 시험하는 듯한 이 사태는 지난 4년간 저임금정책에 묶여왔던 유럽근로자들 전체의 문제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특히 주목을 끌었다.
파업의 발단은 87년 임금인상폭을 둘러싼 노조의 반발이었다. 정부의 국영업체 임금인상이 5%선인데 노조에선 7∼8%선을 내걸고 투쟁을 선언한 것이다.
사회당계의 전국노총 (UGT)과 공산당계의 노동자위원회등 양대노조가 주도한 이 사태에는 철도·지하철·항공 및 해상교통회사등 육·해·공 모든 교통기관 근로자의 90%이상, 그리고 건설·광업분야와 병원·농업분야까지 총2백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스페인의 전체 노동자수 1천만명 가운데 노조소속원은 20%에 이르는 2백만명인으로 이들 모두가 참가한 것이다.
이로인해 이베리아항공과 아비아코항공회사소속의 3백50대 비행기가 고스란히 활주로에 묶였다. 또 근로자의 90%인 6만3천명이 참가한 국영철도회사가 휴업하는 바람에 철도·지하철 승객 1백만명이상의 발이 묶였다. 이중에는 외국관광객 4만5천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규모로 볼때 82년「곤살레스」수상의 사회당정부가 들어선 이래 최대의 것으로 그동안 비교적 사회당정부와 협조관계에 있었던 노조의 첫 정면대결이었다.
그러나 이 파업은 뜻밖에도 한달도 채못돼 끝났고 별 진통없이 근로자들은 모두 직장으로 복귀했다. 정부가 6∼8%의 임금인상을 약속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곤살레스」에 대한 국민의 신임이 노조의 기세를 눌렀기 때문이었다.
파업이 예상외로 쉽게 종식된데는 「곤살레스」의 경제정책을 믿어보자는 국민적 신뢰감이 크게 작용했다. 「곤살레스」 정부는 그때까지 실업자 구제와 인플레억제를 경제지상 목표로 정해 매년 임금인상폭을 줄이는 작업에 나섰다. 올해도 인플레저지선을 5%로 정했기때문에 국영기업체 봉급인상을 5%선에서 묶기로 발표했으며 민간기업체에서도 이수준을 따를 것을 권유했던 것이다.
「곤살레스」는 근로자들의 파업사태에 대해 『아직 스페인이 수많은 요구를 들어 줄만큼 경제적으로 성숙돼 있지 않으며 민주주의도 아직 취약하다』는 논리로 설득했고 그를 지탱하는 사회당정부도 다수당의 힘을 빌어 이를 밀어줬다.
사실 스페인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에 8·8%로 EEC국가평균 3·4%보다 훨씬 높다. 「곤살레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의 부가 그만큼 커져야하고 이는 물가안정을 바탕으로만 이룩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5%상한을 정한 「곤살레스」 정부의 인플레억제노력은 임금인상을 주장하는 노조원들의 논리보다 국민들에게는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국민은 4월10일 하루 파업에만 1천만달러 가까운 손실을 보았다는 신문보도에 자제를 외치기 시작했고 민주화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마당에「판을 깰수 없다」는 주장도 거셌다.
『근로자들이 경제성장에 따른 분배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 몇년간 힘을 기울여온 성장노력을 포기할수는 없다. 유럽의 수준에 따라가려는 노력을 하고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유럽 공동체의 평균 인플레지수보다 3%가 더 높은 상태다』「곤살레스」의 그런 주장에는 힘이 있었고 근로자들은 「대국을 깨지말고 참고 기다리자」는 자세로 파업을 풀었다.
「곤살레스」는 곧잘 사회발전을 등산에 비유했다. 달리는 사람은 얼마 못가 허덕이고 지쳐서 서지만 더디고 노련한 셰르파는 정상을 정복하고 만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82년 그의 노동사회당이 집권했을 때 군부와 경제가 민주화의 장애물로 등장할것이라는 우려를 뿌리친 스페인은 이처럼 유능한 셰르파에 의해 착실히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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