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세금논쟁이 대선 승부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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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연설은 증세냐, 감세냐의 논쟁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 논쟁은 2007년 대선 투표일까지 갈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차기 대선 구도는 세금 정책에 대한 주요 후보들의 입장 차이를 중심으로 정해질 것이다."

19일 여권의 핵심 인사는 전날 있었던 노 대통령의 신년 연설에서 여권이 구상하는 2007년 대선의 승부처, 즉 선거구도의 밑그림이 제시됐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한국 사회의 현안으로 '양극화 문제'를 제기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재원의 절대적 부족'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는 구체적인 방법은 내놓지 않았다.

여권 관계자들은 "결국 증세가 해답이며 이는 단계적으로 나오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민주화 이후 시대'의 사회적 어젠다가 지역 문제에서 이념.계층 문제로, 이념.계층 문제에서 정책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정책 문제의 핵심은 노 대통령의 연설을 계기로 세금 문제로 집중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세금 문제는 한나라당도 지난해 감세 노선으로 분명히 정리한 바 있다. 증세와 감세는 시장과 글로벌 경제를 보는 인식의 차이, 국가의 역할에 대한 철학의 차이, 사회발전 전략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차기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인식이다.

대통령의 한 참모는 노 대통령의 생각을 이렇게 전했다. "다음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참여정부)정책의 흐름을 어떻게 이어가느냐가 문제다. 참여정부는 남은 2년 동안 양극화 해소 제안을 계속 내놓을 것이다. 차기 대선 후보들은 이를 다음 정부에서 이어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공약으로 말하면 된다. 그리고 국민들은 표로 선택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나라당의 차기 주자들도 이날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증세 대 감세 논쟁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박근혜 대표는 "잘 나가는 국가에서 세금을 늘리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세율을 올릴 게 아니라 기업의 수익률을 높여 세수를 늘려야 한다"고 반박했다. 손학규 경기지사도 "잘못된 양극화 해법을 그대로 둔 채 세금을 더 거두고 재정을 확대한다는 것은 '돌려막기'식 정책의 재판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큰 정부는 적자 재정을 낳고, 이로 인해 나라 살림이 거덜난다는 논리다.

반면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은 "경제가 호전되고 국부가 쌓이더라도 중산층과 서민은 상대적으로 가난해지는 시스템이 계속된다면 경제발전의 의미는 제한적"이라며 '개헌을 통한 부동산 공개념 도입'문제까지 거론했다.

정동영 전 장관 측도 조만간 세금 문제가 포함된 양극화 해소 다섯 가지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주장이 국가의 역할 확대를 염두에 둔 '신중상주의'철학이라면, 야당의 주장은 시장의 확대와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문제가 풀린다는 '신자유주의'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이 논쟁은 경제 침체로 유권자들이 어느 때보다 주머니 속 세금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점이어서 열린우리당의 당의장 경선, 5.31 지방선거를 통해 계속 확산될 것 같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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