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바람탄 수해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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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째 요즘은 하늘마저 뒤숭숭해지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큰 질서를 바로잡아나가기 위해 들뜨고 달아오르기 쉬운 마음들을 모두들 애써 다잡아야만할 이 땀에 세차례나 큰 재해가 보름도 채안되는 사이에 연거푸 닥쳤으니 말이다.
하늘의 질서가 어지러워진 때문인지 사람들의 하는 일도 전후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일이 늘어나는 것같다.
요즘 정부가 잇달아 내놓고 있는 수해대책이라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불의의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정부가 최대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물론 당연하다. 그러나 거기에도 일정한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하고 전과 후를 헤아려 형평을 기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더우기 재민대책이 선거를 앞둔 선심 공세의 일환으로 이용되어서는 모처럼의 성의도 빛을 잃게되고말 것이다.
이런 뜻에서 최근 정인용부총리는 고위층에게 『선거심리 편승 욕구에 영합하지 않겠다』고 특별보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태풍 셀마 이후 서울·경기지방 집중호우까지를 겪으면서 드러난 정치와 행정의 어우러짐은 그같은 행정의지를 의심케 한다.
그간의 행정상 대응은 하나같이 「전례」없던 일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재빨리 6개부처 장관의 합동기자회견 자리가 마련되었는가 하면, 지난달 20일자로 「대폭」 상향조정된 피해복구지원 기준이 한달도 채 지나지 않은 7일 당정협의를 통해 다시 상향조정됐고, 유례없는 대규모의 추경이 피해액조차 집계되기 전에 편성되는데도 여야는 입을 모아 그것도 부족하다고 정부를 몰아붙이고 있는판이다.
서로들 조금씩만 심기를 가라앉힌다면 건전한 재정과 통화 운용의 중요성을 한번쯤 다시 짚어볼수도 있고, 그보다 정부로서 할수 있는 「지원」 과 「보상」 의 차이는 무엇이며, 또 예컨대 「불난 집 과 「물든 집」 에 대한 정부 지원의 「형평」은 어떠해야하는가를 서로에게 물어볼수도 있을터인데 그같은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다
「위민」 이란 평소에 해야지 선거를 앞두고는 주고도 별로 좋은 소리를 못듣는 법이다.
또 이번 피해복구 지원규모 쯤으로야 15조원이 넘는 나라살림이 흔들릴리 만무라고 할 통큰 국회의원이 있을지 모르지만 튼튼한 제방도 작은 구멍에서 물이 새 무너져 나가는 법이다.
태풍에 못지않게 무서운 것이 정치바람이 아닌가 싶다.
김수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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