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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있는이야기마을] 설날 맞은 생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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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드디어 생일날 아침. 그러나 아침상에는 미역국이 아니라 떡국이 올라 있었다. 아쉬웠지만 '설날이니까 어쩔 수 없지'라며 스스로 달랬다. 어차피 내가 원한 건 미역국이 아니었으니. 그런데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아무 기색도 비치지 않았기 때문. 그래도 '깜짝파티라도 준비하셨는 모양이다. 놀라는 척할까, 아님 그냥 무덤덤하게 웃을까' 하는 궁리를 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저녁 때까지도 아무 일이 없었다. 어른들은 약주를 드시기 시작했고, '동양화 감상판'까지 벌이셨건만, 내 생일 얘기는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다. '생일이라고 말해 버릴까' 하는 조바심이 일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내 생일은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갔다.

연휴를 마치고 평소 생활로 돌아온 우리 가족. 그러나 나는 예전 같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느낀 배신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말을 시켜도 흥! 대꾸도 안했다. 심부름도 안했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고 물으셔도 입을 굳게 닫았다.

하지만 이런 기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참다 못한 아버지가 회초리를 드셨고, 나는 "생일도 안 챙겨주고…"라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무섭기도 했지만, 이 기회에 못 이기는 척 서운함을 털어놓고 싶었다. 내 고백에 부모님은 많이 놀라셨다. 급하게 상이 차려졌고, 졸지에 뒤늦은 생일잔치가 열렸다. 삐뚤어진 마음도 단번에 가족들 곁으로 돌아갔다.

세월이 흘렀지만, 어린 마음에 배신과 충격, 그리고 절망과 갈등까지 안겨준 그해 설날을 절대 잊지 못한다. 올해는 다행히 설날이 내 생일을 피해갔다. 휴~.

최용재(27.학생.서울 마포구 신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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