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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기획] 알고 쓰시나요 어원 아리송한 은어·비어·속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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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복 기자

일상 언어가 항상 점잖고 품위 있는 말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때로는 점잖은 자리에서는 쓸 수 없는 속어(俗語)나 상스럽고 천한 말인 비어(卑語)가 사용되기도 한다. 특수한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선 자기네만 알아듣는 은어(隱語)도 있다. 이런 말들은 친숙한 사이에서는 친밀감의 표현이 되기도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모멸감을 주기 위한 경우가 더 많다.

대표적인 것이 '꼴통'과 '또라이'다. 이 말들은 최근 진보와 보수 세력이 대립하면서 상대를 싸잡아 비난하는 말로 자주 쓰였다. '또라이'는 좀 모자라는 듯한 사람이나 정신이 나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뜻보다는 상대에 대한 화풀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머리가)돈+아이'에서 '또라이'가 됐다는 게 가장 개연성 높은 추측이다. '꼴통'은 머리가 나쁜 사람을 이르기도 하지만 주로 꽉 막힌 사람이란 뜻으로 쓰이며, 두뇌를 말하는 '골'에 물건을 담는 도구를 의미하는 '통'을 붙인 '골통'이 변화한 것이다.

'삥땅'도 많이 쓰이고 있다. 공금을 횡령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돈의 일부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화투 놀이의 하나인 '섰다'에서 쥐고 있는 두 장의 화투장 가운데 하나가 솔인 끗수를 '삥'이라 하고, 같은 짝 두 장으로 이루어진 패를 '땡'이라 하는데 이 둘이 합쳐지면서 '삥땅'이 된 것이 아니냐는 사람도 있으나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다. "삥쳤다"처럼 줄여서 '삥'으로 쓰기도 한다.

'짬밥' '갈참' '각잡다' 등처럼 군대에서 나온 속어나 은어가 일반인들의 사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짬밥'은 군대에서 먹는 밥이나 버린 밥을 가리키며, 먹고 남은 밥을 뜻하는 '잔반'에서 온 말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갈참'은 이제 곧 제대하고 나갈 고참을 의미한다. '각잡다'는 모포 등을 갤 때 각이 서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왔으며, 자세를 똑바로 하는 것에까지 쓰인다. '총기수입' '미싱하우스'처럼 군대에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용어도 있다. '총기수입'은 총기를 외국에서 들여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총기 청소를 가리킨다. 손질.손봄을 뜻하는 일본식 한자 '수입(手入.ていれ)'에서 왔다고 보기도 하고, '청소하다'를 뜻하는 영어 스위프(sweep)에서 유래했다고 보기도 한다. 대청소를 가리키는 '미싱하우스'는 물청소를 뜻하는 일본어 '미즈나오시(みずなおし)'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억지 영어 'missing house'에서 왔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missing'에 '보이지 않는'의 뜻이 있으므로 먼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막사(house)를 청소한다는 의미에서 이 말이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경찰을 이르는 말인 '짭새'도 심심치 않게 사용되고 있다. 80년대 군사정권 아래에서 대학에 다닌 사람들은 '짭새'의 의미가 바로 와 닿을 것이다. 10.26 이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질 즈음 생긴 말이다. 그때는 주로 사복을 입고 교내에 들어와 데모하는 학생을 연행해 가는 경찰을 일컫는 말이었다. 경찰의 애칭인 '포돌이'처럼 '잡다'의 '잡'과 돌쇠 등에 쓰이는 '-쇠'가 결합해 '잡쇠'가 되고 '짭새'로 변했다고 보기도 하고, 경찰 마크인 독수리를 비하해 부르는 이름이라 보기도 한다.

허우대나 가슴을 뜻하는 '갑빠'도 쓰이고 있다. '갓빠' 또는 '갓바'라 부르기도 하는데, 포르투갈어 '카파(capa)'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가빠'에서 유래한 것이다. '카파'는 비가 올 때 사람의 어깨에서 무릎 위까지 걸치는 망토나 가구.기구를 덮는 보호막 등을 뜻하는 말이다. 카파를 입으면 본래의 몸체보다 커 보이고 듬직해 보인다는 이유로 체면.외양.체격, 가슴 근육 등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이처럼 비속어나 은어는 언어학적 방법이나 사실을 바탕으로 어원을 분석하기는 쉽지 않고 민간 속설에 의지해 그럴 것이라 짐작하는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이런 언어는 세태를 반영하거나 문화적.사회적 특성을 띠기도 한다. 언어생활에 활력이 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듣는 사람에게 혐오감과 모멸감을 주는 것이 적지 않다. 결국은 정상적인 언어를 파괴하고, 사용하는 사람의 격을 떨어뜨리는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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