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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저마다 ‘주인공 의식’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우리는 국가 위난의 상황 속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라고 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과 대통령 탄핵 국면’에 대한 대한불교 자승 총무원장의 진단이다. 10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총무원 청사에서 열린 신년간담회에서 자승 스님을 만났다. 그는 중국 당나라 때 걸출한 인물인 임제 선사의 유명한 선구(禪句)를 먼저 던졌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풀이하면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처하는 곳마다 참(眞)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자승 스님은 “언제 어디서나 주인공으로 살아간다면 그 자리는 가장 진실하고 행복한 진여(眞如)의 자리가 될 것”이라며 촛불정국에서 보여준 국민 각자의 주인공 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스님은 또 “국민은 촛불민심을 통해 충분한 능력과 자격이 있음을 이미 증명하였다”며 이를 ‘화중생연(火中生蓮)’에 비유했다. 2010년 3월 순천 송광사 산자락에서 열린 법정 스님의 다비식 때도 쌓여 있는 장작더미를 향해 상좌가 불을 넣으며 “화중생연”이라고 외쳤다. 불꽃 속에서 연꽃이 핀다는 뜻이다. 자승 스님은 “국가적 위기 속에서 오히려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다”는 의미라고 했다.

자승 스님은 불교적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이 가야할 지향점도 내놓았다. ‘특권과 차별이 없는 공정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이다. 자승 스님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국가적 위기는 소수 세력이 정치적ㆍ경제적으로 서로 결탁하여 특권을 누리며 헌법 정신을 무력화했기 때문”이라며 “헌법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말끝에 붓다의 어록을 하나 예로 들었다. 자승 스님은 “부처님께서는 사람의 고귀하고 천함은 혈통이나 신분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의 행위가 결정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저마다 우리 사회의 주인이라는 ‘주인공 의식’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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