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논밭·집터엔 진흙만 뒤범벅|소·돼지·닭도 떼죽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부여·서천=길진현기자】하늘에서 본 수해는 그러나 지상의 현장에서 본 참상의 겉모습에 불과했다.
가는 곳마다 진흙으로 뒤범벅이 된 수박밭, 자갈밭이 되어버린 과수원, 물빠지기 시작한 논바닥에 처참하게 널려진 소·돼지·닭등 가축의 시체들. 수마가 할퀴고간 상흔은 여기저기에서 참담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금강제방 4㎞가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농경지 30여만평과 가옥 50여채가 물에 잠겨 수중마을이 됐던 부여군 세도면 가회리-.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분뇨등 온갖 오물이 널린 마을길은 퀴퀴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동네어귀에서 만난 주민 김연우씨 (62) 는 『4백여마리의 돼지와 1천여평 토마토밭을 모두 잃었다』 고 한숨.
산등성이 반쯤 무너져 내린 자신의 집과 축사를 가리키며 『집과 토마토밭·가축들을 한꺼번에 잃었으니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고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22일 새벽 산사태로 200가구 12명이 목숨을 빼앗긴 충남 부여군 남면 회동3리에서는 23일 하오 숨진 어린이 8명의 장례를 치른데 이어 24일 마을주민 1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어른 4명의 합동장례를 치렀다.
산사태로 무너진 집은 흙더미속에 파묻혀 흔적도 없었고 솥·남비등 가재도구가 집에서 50여m아래 떨어진 산기슭까지 돌·모래등과 함께 쓸려 내려가 있어 사고당시의 처참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회동리일대는 20여군데에서 산사태가 나 흙·돌등이 논을 뒤엎어 복구할 엄두조차 내지못한채 동네주민들은 한숨만 짓고 있다.
산사태로 온마을 38가구가 흙더미에 깔려 8명이 숨지는등 폐허가 돼버린 서천군 문산면 금복리 산간부락-. 해발 5백여m 높이의 마을뒤 천방산의 골짜기 수십개가 22일 새벽 쏟아진 엄청난 장대비로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는 바람에 계곡이 없어지고 계곡아래 경사 논과 밭마저 돌더미·흙·나무등걸등으로 50㎝∼1m두께로 덮여버렸으며 그 위로 시뻘건 황토물이 새도랑을 이루며 흐른다.
집 22채가 흙더미에 깔려 완전히 부서지고 35개동이 반파된 이 마을엔 25일 군병력과 군청직원·민방위대원등 3백여명이 긴급복구에 나섰으나 흙을 퍼낼 포클레인등 장비가 크게 부족한데다 지대가 높아 접근을 하지 못해 주민들은 발만 동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