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이 성폭행했다"…독일 정치 뒤흔드는 가짜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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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수석 고문

사진: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수석 고문

오는 9월께 총선을 앞둔 독일에서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AP통신은 9일(현지시간) 독일 바이에른주 로젠하임 경찰이 '난민이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다'는 가짜뉴스를 유포한 혐의로 55세 여성 주민을 조사 중이라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지난주 이 지역에서 "17세 소녀가 난민에게 잔혹하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자 경찰이 이를 부인하며 진상 조사에 나선 결과다. AP는 "독일 경찰이 가짜뉴스 대응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며 "독일에서 9월 총선을 앞두고 특히 난민과 관련된 가짜뉴스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정부가 가짜뉴스에 긴장하는 이유는 또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자극적인 가짜뉴스로 악명 높은 미국 온라인 매체 브레이트바트가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에 지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난해 11월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 1등 공신으로 평가받는 브레이트바트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비판하는 일부 극우세력의 거짓 주장을 사실인 양 보도해 논란을 일으켰다. 트럼프 당선을 물심양면 지원한 스티브 배넌 전 브레이트바트 대표는 트럼프 당선 이후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수석 고문에 임명됐다.

독일에선 클린턴 패배에 큰 역할을 한 브레이트바트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4선 실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극우 색채가 짙은 브레이트바트의 뉴스가 독일 국민의 반(反)난민정서를 자극해 난민 우호정책을 펼쳐온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4일 "독일 주요 매체는 난민의 범죄도 일반 범죄와 거의 같은 비중, 같은 톤으로 보도한다. 독일인들은 이처럼 무미건조하고 심지어 지루할 정도로 점잖은 뉴스에 익숙해져 있다"며 "그러나 이같은 독일 언론의 관행이 브레이트바트의 진출로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지난달 23일 연방하원 정책 토론회 연설에서 "최근엔 가짜 사이트나 악성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들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가짜뉴스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반면 독일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브레이트바트의 독일 진출은 아주 멋진 일"이라고 반겼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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