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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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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건용 작곡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이건용
작곡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1987년 1월 13일 자정, 박종철은 자기 하숙방에서 치안본부 수사관들에게 연행됐다. 다른 수배 학생의 행방을 캐기 위한 불법 연행이었다. 박종철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물고문·전기고문을 받다가 다음 날 질식사로 사망했다. 치안본부는 이 일을 숨기려 했으나 짧은 보도가 새어 나간 뒤 해명에 나서 “수사 도중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져 사망하였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의혹을 더욱 키웠다. 경찰은 며칠 못 가 고문에 의한 죽음이었음을 인정하고 관련 수사관들을 처벌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이 역시 축소 조작된 것임이 드러났고 이에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6월항쟁에 이르게 된다. 거리에서 학생들이 연행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던 때였다. 사람들은 박종철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아이도 저렇게 끌려가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너와 나의 일치가 1987년 6월항쟁의 변혁을 가져온 힘
더 좋은 세상을 열기 위하여 냉정한 바라보기가 필요

실은 그 이전에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있었다. 여대생 권인숙은 위장 취업을 위해 주민등록증을 위조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다른 수배자에 관한 정보를 묻던 수사관에 의해 이 지면에 옮길 수 없을 정도의 성적 행위로 고문을 받았다. 그는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고발하며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당국은 “성적 수치심까지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운동권의 행태”라며 여론을 호도했다. 시민들도 설마 하며 이 일을 자신의 문제처럼 여기지 않았다. 박종철 사건이 터지자 사람들은 성고문 사건 역시 사실이었음을 알게 됐고 자신들의 외면이 박종철의 고문을 가능하게 했다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은 이가 나의 아들일 수 있고 내가 그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분노와 책임감의 공유는 무수한 시국선언과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로 이어졌고 마침내 6·29 선언을 끌어냈다. 그 결과가 오늘까지 지속돼 온 87년 체제다. 이해에 황지우 시인은 시집을 냈다. 제목이 『나는 너다』였다.

너와 나의 동일시는 예술에 있어서, 예컨대 감상에 있어서 중요한 원리 중 하나다. 자기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악당을 쓰러뜨리는 주인공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요, ‘나와 같은’ 거짓말쟁이에다 말썽꾸러기라고 느끼기 때문에 피노키오가 제페토 할아버지를 구하러 길 떠나는 대목에서, 그리고 할아버지를 구해 내고 자기는 죽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예술작품과 주인공에 대해서뿐만이 아니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서로의 마음이 읽혀질 때, 같은 분노와 같은 염원이 만날 때 너와 나 사이의 벽이 사라지면서 자신과 세상이 하나가 되는 듯한 충만감을 느낀다. 이런 집회가 축제의 성격을 띠는 이유다.

비슷하지만 “우리가 남이가”는 전혀 다르다. 여기서 ‘우리’란 우리 편을 말한다. ‘남’은 저쪽 편이다. 이 말의 뜻은 “네가 우리 편이라면 저쪽 편에 이익이 되는 생각과 행동은 버려라”이다. “나는 너다”가 나를 넘어 너와 하나가 되는 것이라면 “우리가 남이가”는 남과 구별해 우리끼리 패거리를 이루는 것이다. 전자가 이기심의 극복이라면 후자는 이기심의 확대 강화다. “나는 너다”라고 느끼지 않았으므로 성고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눈을 감았고 “우리가 남이가”에 동조해 교수들은 학교에 기금을 많이 따오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삼간다. 그 결과가 박종철의 죽음이요, 황우석 사건이며 지금 진행되는 이화여대 비리 사건의 배경이다.

너와 나의 동일시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예술 원리가 “거리를 취하고 바라봄”이다. 정확히 보기 위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상의 양과 질과 형태와 의미를 음미한다. 분석·비교·계측·탐문이 병행되기도 한다. 이익과 관심의 작용은 금물이고 감동조차 억제된다. 축제적 열광에 만족할 것이라면 몰라도 더 좋은 것, 더 가치 있는 것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마음을 합했다고 다 된 것이 아니다. 함께 새날을 맞이하려면 내미는 손을 맞잡기 전에 물러서서 잘 보고 가려야 한다. 그 손이 “나는 너다”의 손인지 “우리가 남이가”의 손인지. 『나는 너다』의 첫 시구는 이렇다.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

이건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