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중동 왕조 뒤흔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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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인터넷이 중동 왕조의 절대 권위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언론에 재갈이 물린 상황에서 인터넷이 여론의 형성.전달.확산을 촉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헌군주제 국가인 바레인에서는 왕족과 정부가 TV.라디오 방송을 독점하고 신문 발행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바레인의 하마드 왕과 그의 칼리프 왕족들이 비판적인 인터넷 사이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16일 전했다. '바레인온라인'(BahrainOnline.org) 창설자인 알리 압둘이맘(28)은 왕족들에게 악명 높은 존재다. 그는 인터넷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절대적인 권력을 쥔 칼리프 왕조에 도전하고 있다.

바레인온라인에는 정부에 비판적인 네티즌들이 모여들고 있다. 국경일인 지난해 12월 16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수백 명의 네티즌이 웹사이트의 '국민포럼' 코너에 접속했다. 수니파 칼리프 왕족이 다수 시아파를 통치하기 시작한 1971년의 이날이 과연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묻는 글들이 웹사이트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왕자들의 대형 사진이 내걸리고 불꽃놀이가 화려하게 하늘을 수놓고 있는 수도 마나마의 경축 분위기와 대조적이었다.

한 네티즌은 "바레인에서는 왕을 찬양하면 나라를 찬양하는 것이고, 왕에 반대하면 조국을 배반하고 외국을 위해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독재의 증거"라고 지적했다. 인터넷이 아랍 세계의 정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한 장면이다. 압둘이맘은 "그들이 주인이고 우리는 종인 시대는 갔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최근 바레인온라인과 같은 반정부 성향의 인터넷 웹사이트를 탄압하고 있다. 왕조의 기반을 흔들 불씨로 보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압둘이맘과 사이트 실무자 2명이 수 주간 투옥됐다. 잇따른 항의 시위와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풀려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국왕을 모욕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바레인의 경제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셰이크 무하마드 알칼리파 왕자는 "바레인은 서구적 의미의 민주국가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바레인은 칼리프 왕족이 내각 각료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중동에서는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국가에 속한다. 하마드 왕은 99년 즉위할 때 민주주의 실시를 약속했다. 그러나 2002년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한 새 헌법을 일방적으로 선포해 국내외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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