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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와 ‘피겨 반란’ 꿈꾼다, 2010년 김연아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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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차준환이 8일 종합선수권 프리 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강릉=김진경 기자]

차준환이 8일 종합선수권 프리 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강릉=김진경 기자]

김연아(27)가 은퇴한 한국 피겨계에 새 별이 서서히 빛을 내고 있다. 8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제71회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남자싱글에서 우승한 차준환(16·휘문중)이 그 별이다. 그는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156.24점을 받아, 전날(7일) 쇼트프로그램의 81.83점을 합쳐 총점 238.07점으로 우승했다.

남자 피겨 역사 바꾸는 16세 차준환
쇼트 첫 80점대, 종합선수권 우승
오서 “처음 봤을 때 김연아 떠올려”
2015년부터 지도, 실력 수직상승
기술보다 표현력, 거울 보며 연습
“평창 올림픽 출전권 꼭 따고싶다”

김연아에 이어 이번 차준환까지, 두 개의 별 뒤에는 브라이언 오서(56·캐나다) 코치가 있다. 차준환의 프리스케이팅 연기 초반, 오서는 두 손을 계속 비볐다. 표정에서 초조함이 묻어났다. 차준환이 4회전 점프, 쿼드러플 살코를 마치자 오서 표정이 풀렸다. 차준환의 경쾌한 스텝연기 때는 오서도 어깨를 흔들었다. 차준환이 착지 도중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자 박수로 제자를 격려했다. 오서는 4분10초간의 연기를 마치고 나온 차준환을 따뜻하게 안아줬다.

오서 코치는 차준환 주변에 취재진이 몰리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준(오서가 부르는 차준환의 애칭)은 한국의 새 스케이팅 스타”라고 치켜세웠다. 그럴 만도 하다. 차준환이 지나온 길이 한국 남자피겨의 새로운 역사다. 그는 이번 쇼트프로그램에서 한국 남자선수로는 처음 80점대를 받았다. 지난해 전국남녀 회장배 랭킹대회에선 국내 남자선수 최고기록(242.44점)을 세웠다. 또 지난달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선 동메달을 땄다. 한국 남자선수의 그랑프리 파이널 입상도 처음이다.

오서 코치를 만나 급성장한 차준환은 평창 올림픽 메달을 노리고 있다. [강릉=김진경 기자]

오서 코치를 만나 급성장한 차준환은 평창 올림픽 메달을 노리고 있다. [강릉=김진경 기자]

차준환은 오서 코치와 2015년 3월 처음 만났다. 오서와 손을 잡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오서는 첫 제자 김연아를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여자싱글 금메달리스트로 키워냈다.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선 하뉴 유즈루(23·일본)를 남자싱글 정상에 올려놨다. 하뉴의 경쟁자이자 2015, 2016년 세계선수권 남자싱글 우승자 하비에르 페르난데스(26·스페인)도 오서가 가르친다. 그런 오서가 차준환을 선택했다. 오서는 “2년 전 유튜브로 준의 경기영상을 처음 봤다. 어떤 스타일도 자기 것으로 흡수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 빼어난 스피드는 김연아를 연상시켰다”고 말했다.

김연아가, 하뉴가 그랬던 것처럼, 차준환 역시 오서한테 배우면서 급성장했다. 약점이던 트리플 악셀 점프를 1년 만에 습득했다. 이어 남자선수들의 필살기인 4회전 점프를 완성했다. 차준환은 “‘오서 팀’에는 점프·스핀·스텝·안무 등 각 부분을 맡는 기술코치가 따로 있다. 부족한 부분을 해당 코치와 훈련하면 오서 코치가 전체적인 프로그램을 봐준다”고 전했다. 오서는 “지도철학의 기본은 경청이다. 선수들이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다. 얘기를 잘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요즘 차준환을 가르치면서 오서가 가장 신경 쓰는 건 표현력이다. 오서는 “요즘은 (피겨에서) 예술성이 중요하다. 준이 부끄럼이 많아 그간 표정 없이 기계적으로 점프를 뛰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차준환도 스스로 어떤 표정을 짓는지 수시로 거울을 본다. 배경곡 가사도 번역해 따라 부르며 감정을 느껴보려고 노력한다.

2001년 10월생인 차준환은 다음 시즌(2017~18시즌)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다. 내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도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은 기대와 가능성일 뿐이다. 소치 겨울올림픽을 마지막으로 개최국 자동출전권이 없어졌다. 남녀싱글은 각각 30명이 출전한다. 차준환의 희망도 현재는 “올림픽 출전권을 따는 것”이다. 오서는 조심스럽게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뛸 경우 팬들 기대가 엄청나다. 성과를 내려고 서둘러 점프 난이도를 올리면 부상 위험이 크다. 실력을 차근차근 쌓도록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선 시간을 가지고 인내해야 한다. 한국은 김연아라는 특별한 다이아몬드를 한 번 만들었다. 다시 한 번 더 만들 수 있다”고 기대를 높였다.차준환은 오는 3월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리는 시즌 마지막 대회,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또 한 번 메달을 노린다.

강릉=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사진=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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