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특검 "블랙리스트는 시험 '기출문제' 같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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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특별검사팀은 5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활용 과정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전 청와대 정무수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관련됐다고 밝혔다. 이규철 특검보는 정례 브리핑에서 “블랙리스트는 (특정 인사들에 대한) 지원 배제 명단이란 걸 확인했다”며 “여러 관계자의 진술과 확보된 자료를 통해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장관이 관련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지시 정황 있는지도 조사
문체부 간부는 국정원 개입 증언
“블랙리스트는 기출문제 같은 것
국정원 사전 검열 때 계속 늘어나”

블랙리스트(지원 배제 명단)의 존재 사실과 작성·관리자를 특검팀이 공식 확인해 준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수사가 진척됐다는 의미다. “블랙리스트 작성을 박근혜 대통령이 지시했느냐”는 질문에 이 특검보는 “그런 정황이 있는지 수사 중”이라고 부인하지는 않았다.

특검팀은 또 블랙리스트 활용 과정에 국가정보원이 개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검팀 관계자는 “문체부 실무자들에게서 국정원이 각종 인선과 예산 배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진술과 정황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특검팀의 수사선상에 오른 문체부 고위직 A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언젠가부터 실무자들이 예산 배정안 등을 당시 김종덕 장관에게 보고하기 전에 ‘전무’라고 불리는 문체부 출입 국정원 정보관을 통해 국정원의 검토를 받는 게 관행이 됐다”고 말했다.

A씨는 국정원에 사전 보고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명단을 올리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에서 ‘안 된다’고 거부하는 일이 계속 반복됐다. 국정원의 사전 검토를 받으면서 그런 일이 줄었다”고 했다.

그는 “(문체부 실무자들이 보기에) 블랙리스트는 시험 ‘기출문제’ 같은 것이다. 기출문제(기존의 블랙리스트)에 있는 리스트 등장인물만 지원 대상에서 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또 거절당하면서 리스트가 1만 명 가까이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윤선 문체부 장관의 관여 의혹에 대해 “(블랙리스트를) 모를 수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국회에서 처음 폭로한 뒤 조 장관이 대책회의를 주재했는데 어떻게 모르겠나”고 말했다. 이어 “폭로 이후 대응방식을 두고 정관주(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 차관과 조 장관 사이에 이견이 있었던 걸로 안다. 정 차관이 많이 괴로워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뿐만 아니라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곳곳에 국정원이 개입한 정황도 조사할 방침이다. 특검팀의 주축인 윤석열(58) 수사팀장은 이날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도 가능한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단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이날 송수근(56) 문체부 1차관을 소환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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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차관은 문체부 기획조정실장(2014년 10월~2016년 12월) 재직 시절 ‘건전콘텐츠TF’ 팀장을 맡아 블랙리스트에 오른 각 실·국의 ‘문제사업’들에 대한 관리 및 지원 축소 등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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