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여기서부터<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검사도 한편이다. 가해자는 풀어주고서 왜 피해자만 가두어 두느냐.』 지난 2월25일 서울고법104호 법정.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의 권모양(23)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
당시 고문상황을 설명하는 권양의 진술도중 검사가 『고문은 이 사건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이 없다』며 재판부에 발언제지를 요청하자 방청석에선 야유와 함께 원색적인 욕설이 터져 나왔고 어떤 방청객은 교도관들의 모자를 빼앗아 검사석에 집어던졌다.『법정에 들어가는 일만 없어도 공안검사하기가 한결 편하겠다.』는 어느 중견검사의 고백처럼 시국관련사건 재판에서 검찰은 흔히 야유의 대상이 돼왔다.
6·10대회 후 명동성당농성사건이 한창일 때 검찰간부는 성고문사건의 문모경장을 구속했더라면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 발생치 않았을 것이라면서 검찰권의 행사에 외풍을 못마땅해 했다. 이것이 검찰 스스로도 안쓰러워하는 검찰의 위상이다.
검찰에 대한 불만은 85년7월 서울미문화원사건 재판에서 절정을 이루었고 그 후 잇단 공안사건을 통해 계속됐다.
85년 9월 고대앞 사건을 거쳐 같은해 11월18일 발생한 민정당중앙정치 연수원 점거 농성사건처리에 있어 검찰은 연행학생 1백91명 모두를 구속함으로써 커다란 충격은 주었다.
지난해에는 2월4일이 발생한 서울대연합시위로 1백89명을 무더기 구속한데 이어 11월엔 건국대사건과 관련, 1천2백65명을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86년도 예산안처리과정에서 빚어진 의사당사태로 86년 정초부터 여야의원들이 삼청동 검찰청사 별관에 나와 조사를 받으면서 검찰권의 정치개입은 노골화됐다.
지난해 10월의 유성환 의원사건은 국시논쟁과 함께 국회의원 면책특권의 한계에까지 검찰권이 깊숙이 개입한 사례로 법조계는 지적하고 있다.
지난 4월13일 1인인 서울형사지법은 전의원의 공소사실 중 국시무분에데해 서울대 권영성교수 (헌법학)등의 사실조회 회신내용등을 토대로 유·무죄에 대한 판단을 보류해 버렸다.
권교수는 또 최근 항소심재판부인 서울고법 제5형사부에 보내온 면책특권에 관한 회신에서도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은 의원들에 대한 행정부의 탄압을 배제하고 국회의 자율성과 독립적 기능수행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발언원고를 기사들에게 사전 배포한 행위는 배포장소가 의사당안일 뿐 아니라 그 내용이 공개회의에서 발언할 내용인데다 원고배포자체가 의제와 관련있는 준비행위로 관례화 돼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면책대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 검찰권의 외도(?)에 제동을 걸었다.
법조계에서는 국민의 기본권보호를 1차적 임무로 하는 검찰이 오히려 이는 외면하고 정치의 뒤치다꺼리에 매달린다고 우려하고 있다.
조영래변호사는『인권옹호를 위한 정부내의 기구로서 설치된 것이 다름 아닌 검찰』이라며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후 고문방지대책의 일환으로 정부내에 인권옹호를 위한 특별기구를 두자고 거론된 것은 역설적으로 본래의 좌표를 잃어버린 오늘의 검찰상』 이라고 지적했다.
조변호사는 『박군사건 이전에도 숱한 고문피해 주장이 있었지만 검찰이 자발적으로 진상을 파헤쳐 고문관련자를 처벌한 일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김근태씨나 권양사건처럼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건에서조차 아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권 독립을 위해선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과 외부간섭배제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검찰은 적어도 제도상으로는 다른 행정부처와는 달리 법무장관·검찰총장이란 독특한 이원지휘체계를 갖추고 있다.
국무위원으로 정치적 자리라 할수 있는 법무장관과는 달리 검찰총장은 정치적「외풍」을 막아 「준사법부」로서의 검찰권 중립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로 볼수 있다.
이세중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검찰이 잇따른 공안사건처리과정에서 정치적 영향 때문에 정치권에서 물어야할 문제까지도 형벌권을 행사,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게됐다』고 진단하고 『검찰권 독립을 위해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협은 지난 2월 검찰권 독립을 위해 검찰총장 임기제 (2넌)와 검사인사위원이회 설치등을 골자로 한 검찰청 법개정안을 마련, 법무부와 국회에 건의해 놓고있다.
외부의 영향을 의식하시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대법원장·대법원판사·감사원장· 군참모총장처럼 임기제를 도입해야하며 공정한 인사를 위해 검찰총장·법무차관·고등검사장·검찰국장등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를 설치해야한다는 것이다.
검찰권 독립과 인사에 관해 조준희변호사는 『검찰인사의 독립을 위해 검사인사에 관한 법무장관의 권한을 검찰총장에게 넘겨주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외부간섭배제와 관련, 법조계에서는 흔히 말하는 「관계기관회의」를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법무장관이나 검찰총장이 중요사건 처리에 앞서 외부기관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있을 수 있겠지만 수사중인 특정사건에 대해 외부기관의 구체적인 의견을 듣는 실무자회의는 양형의 원칙이나 독자적 판단을 잃게 하고 나아가 수사의 밀행성까지도 침해당해 검찰권이 설자리가 없게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검찰권 독립과 신뢰회복은 현행제도에 있기보다 검찰 스스로가 외부의 지시에 안주해온 지금까지의 자세에서 탈피. 자신의 목소리로 지키겠다는 끊임없는 노력이 요청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