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표 강화, 대야 협상력 제고 당정협조관계 새로운 모양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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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에 노태우총재 시대가 개막됐다. 임기 마지막 날까지 당총재로서 전권을 행사하고 당내 인물교체를 통해 평화적 정부이양을 달성하려던 전두환대통령의 구상이 수정되고 민정당은 이제 새 선잠에 의해 미답의 항로로 출항하게 됐다.
9일의 사면·복권 발표에 이어 하루만에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가 나오는 것을 보면 여권의 정국대응방식이 속공으로 가급적 기선을 잡아나가자는 작전인 것 같다. 총재직이양문제는 꽤 오래 전부터 내부적으로는 논의돼 뫘으며 6·29선언이 나오자 시간문제인 것으로 예상돼 뫘다. 이 문제 역시 여권의 시국 대응카드의 하나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시기를 어떻게 잡느냐가 관심사였는데 사면정국과 9일의 이한열군 장례식등을 거치면서 빠른 행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전대통령의 총재직 사뢰는 여러가지로 정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 여대표의 강화라는 의미가 있다. 노대표라는 주자를 앞세워 활로를 열겠다는 여권으로서는 여대표의 입장과 이미지를 부단히 강화하고 고양함으로써 두 김씨를 상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노대표의 총재승격은 여권으로서는 자연스런 선택이며, 이로써 노대표는 대야협상력이 강화되고 자기중심으로 당체제를 구축하는데 명실상부하게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대통령의 총재직사퇴는 또 공정한 정치를 요구하는 국민·야당에 대한 회답이라는 성격도 있다. 4·13개헌유보이후 나타난 민심의 동향은 집권세력 마음대로 게임 룰을 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야당은 공정한 정치일정의 관리를 위한 거국중립내각을 「권고」했다. 따라서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초연한 입장」에서 국정을 중립적으로 관리하겠다는 7·1특별담화의 약속을 실천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민정당의원을 경하고있는 장관들이 내각에서 철수할 것이란 얘기도 같은 논리로 해석된다.
전대통령으로서는 단임약속을 또한번 명쾌히 실증한 것이며 그동안 일부 세간에 나돌던 불신을 씻고 초연한 입장에서의 임기 마무리에 들어간 셈이다.
대통령의 총재 사퇴로 앞으로 당정관계의 모양이 어떻게 될지도 관심사다.
대통령인 총재에 대한 국정건의라는 형식으로 민정당이 국정에 관여해 왔다고 볼 때 대통령이 총재직을 떠나는 이상 당정관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권 내부에서는 필요한 협조사항은 당과 내각, 당총재와 총리 관계에서 협의하는 방식을 생각하고있는 듯하다. 대통령은 명예총재로서 계속 당왼이긴 하지만 『초연한 입장』을 취할 것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당무보고를 받지 않을 것임은 물론 정치문제에 중립을 지키는 형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볼 때 당정관계는 형식상 한걸음 거리를 두게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같은 여권이라는 점에 변함이 없으므로 협조관계는 보다 비공식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여러가지 사항을 생각할 때 전대통령의 총재 사퇴는 집권당의 승계과정에 첫 선례를 남기는 셈이다.
이제 총재아래의 대표가 아닌「노태우총재」로서는 독자적으로 당을 재편성해 선거팀을 짜고, 양 김씨를 상대로 협상과 경쟁을 벌여야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
노대표가 당장 시급히 해야할 일은 여권의 전열을 자기 중심으로 구축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전대통령중심으로 짜여진 모든 조직과 인사를 자신을 구심점으로 재편, 보강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확립된 위계질서가 부실하고 가용인력이 한정된 상황에서 대통령과 다른 자신의 컬러를 담는 것은 무척 어렵다.
노대표의 측근에서는 민정당이 그동안 업적에 비해 눈에 띄게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은 △ 인사정책의 결함 △ 정책의 일관성 결여 △ 권력주변의 비정상적 활동 탓이 크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노대표는 부총재 신설·특보팀 구성등 기구개편을 통해 당외인사도 영입하고 지금까지 다소 경시되어온 다선원칙, 온건·민간인 우대의 방향에서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표는 또 야당이 제기할만한 문제점을 정책적으로 선제하고 인사·자금을 통해 소속의원을「신나게」 뛰게 하면서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전제로 국민정당의 면모를 갖츨만큼 인재충원을 할 계획이다.
노대표는 이미 「언제라도, 누구든 만나겠다」는 원칙을 천명했고 김영삼백주당총재는 물론 김대중씨와도 적극적으로 대화하겠다는 자세다.
그리고 노대표는 여당 프리미엄에 연연하지 않고 야당할 각오로 임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두 김씨의 요구가 국민들의 눈에 명백히 지나친 것이 아니면 다 들어주겠다는 태도다.
따라서 개헌안·각종 선거법등의 큰 줄기는 쉽게 합의할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정당은 현재 두 김씨중 어느 한사람과 싸울 경우, 두 김씨 모두 출마할 경우, 두 김씨가 러닝 메이트가 될 경우등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비, 다양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전대통령의 총재사퇴에 대해 민정당 일각에서는 공무원들의 헙조태세에 이능이 오지 않겠느냐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민정당내에는 벌써부터 노태우선언의 구체적 추진에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는 의구심과 함께 이제 공무원의 지지와 협조로 선거할 생각은 버리자는 다짐이 나돌고 있다. 공무원을 「우리편」으로 보는 시각이 교정되지 않고는 공무원을 설득할수 없다는 사고의 전환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노대표로서는 이제 여권내부의 여건 조성은 거의 끝난 셈이다. 앞으로는 자신이 새로운 여권 구심점으로 정권경쟁에서 어떻게 뛰느냐의 문제만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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