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거리 없는 겨울 어촌 과메기 벌이 쏠쏠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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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구룡포에서는 요즘 과메기 말리기가 한창이다. 생산업체에 고용된 주민들이 과메기를 매달고 있다. 구룡포=조문규 기자

"아이고 허리야. 그래도 '과메기'덕에 돈깨나 만져 보잖아."

"맞다. 과메기가 효자지. 겨울철에 일할 데가 어디 있노."

50여 평의 배지기(꽁치의 배를 갈라 뼈를 발라내는 것) 작업장은 30~50대 주부들의 신명난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10여 명의 주부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꽁치 살을 발라내 세척장으로 옮겼다.

12일 오후 경북 포항시 구룡포읍 동남상사엔 활기가 넘쳤다. 구룡포의 과메기 생산업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곳으로 모두 40명이 일하고 있다. 과메기는 꽁치를 두 쪽으로 나눠 뼈를 발라내고 물에 씻어 바닷바람에 숙성시킨 겨울철 이 지역 특산물이다. 이 업체에서 8년째 일하고 있다는 이은경(43.여)씨는 "돈 버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아느냐"며 자랑했다.

'구룡포 과메기'가 조그마한 어촌 마을을 거대한 일터로 바꾸어 놓았다. 농한기에 할 일이 없어 손을 놓고 있던 사람들에게 짭짤한 소득원이 되고 있다.

구룡포 과메기조합에 따르면 과메기를 만드는 500여 곳에서 모두 1200여 명이 일을 한다. 일을 하는 사람이 지난해보다 200여 명 늘었다고 한다. 과메기가 서울.수도권 주민에게 알려지면서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상사 윤용주(47) 사장은 "15명의 인력이 하루 15시간씩 작업해도 주문 물량을 대기 벅찰 정도지만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정 수입을 보장하기 위해 인력을 더 늘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읍내의 과메기 생산업체인 바다상사도 비슷했다. 30여 명이 배를 갈라낸 꽁치를 씻어 대나무 발에 걸어 말리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들 가운데 3명은 포항 도심과 오천읍 등지에서 온 외지인이다. 오천읍에 산다는 최모(58.여)씨는 "고되긴 하지만 돈 버는 재미가 이만한 곳이 없다"며 활짝 웃는다. 고용 인력의 70%가량이 여성이어서 가계에 많은 보탬이 된다고 한다.

주민들은 "일거리가 없어 대낮에 술 마시고 읍내를 배회하던 젊은이들도 사라졌다"며 "겨울철 일자리 창출의 일등공신이 과메기"라고 말한다.

수입도 짭짤하다. 주부들은 꽁치 한 상자(65~70마리)를 배지기 하면 3000원을 받는다. 하루 일당 15만원에 이르는 사람도 많다. 물에 씻은 꽁치를 건조장에 널고 포장하는 사람의 일당도 최소 5만원이다. 이렇다 보니 4개월 만에 1200만원의 목돈을 쥐는 사람도 상당수다.

과메기조합은 지난해 전체 인건비가 60억원이었지만 올해는 1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했다. 과메기조합 대표 정재덕(66)씨는 "등 푸른 생선으로 만든 영양식품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문이 엄청나게 늘어 매출액도 지난해의 두 배가량인 500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일자리도 덩달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포항시는 구룡포읍 일대를 '과메기 특구'로 지정해 과메기 거리를 만들고 건조장 건립을 지원하는 등 산업.관광자원으로 키워나가기로 했다.

?과메기=겨울철 청어나 꽁치를 바닷바람에 숙성시킨 구룡포 지역의 향토식품. 청어의 눈을 꼬챙이에 꿰어 말렸다는 '관목(貫目)'이란 말의 이 지역 사투리다. 19세기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청어를 연기에 그을려 부패를 방지하는 데 이를 연관목(煙貫目)이라 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예전에는 동해에서 잡은 청어를 말려 과메기를 만들었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청어가 잘 잡히지 않자 어획량이 많은 꽁치로 대체됐다. 요즘은 살이 푸석푸석해 씹는 맛이 떨어지는 근해산 대신 원양 꽁치로 과메기를 만든다. 원래는 청어나 꽁치를 통째로 영하 5도~영상 5도 상태에서 15일 정도 말렸다가 내장을 빼내고 먹었다. 그러나 지금의 과메기는 도시 사람들도 쉽게 먹도록 하기 위해 배를 가르고 내장과 뼈를 발라내 영하 1도~영상 8도 상태에서 3일 정도 건조해 만든다.

포항=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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