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읽기] 한때의 문학청년 그는 어쩌다 악마로 변신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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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나치즘의 화신이었던 선전장관 괴벨스(右)가 히틀러(左)와 함께 총리청 정원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원제 Goebbels)
랄프 게오르크 로이드 지음, 김태희 옮김
교양인, 1052쪽, 3만9000원

'반지의 제왕'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누군가? 당연 골룸이다. '스타워즈'에서 매력적인 인물은 누군가? 아나킨이다. 성자가 고통을 이겨내고 자신을 선의 대리인으로 세우는데 성공한 자라면, 이들이말로 성자 못지 않은 고통을 받고서 악의 화신으로 태어난 자들이다. 갈등 속에서 성인도, 악마도 될 수 있는 것이 인간인데, 그런 우리에게 악인의 탄생을 엿보는 것이란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 책은 세계 2차대전의 아나킨이라 할 수 있는 괴벨스가 제3제국의 선전장관이자 히틀러 숭배자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그의 내면의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 악마의 입을 통해 쉴새없이 거짓말을 쏟아내며, 마침내 독일 국민으로부터 히틀러에 대한 신앙을 이끌어낸 이 선동정치의 천재도 처음부터 망가진 인간은 아니었다. 심지어 "하켄크로이츠(나치의 상징)를 보면, 거기다 똥싸고 싶어진다"(85쪽)며 나치즘을 비웃고, 연애편지와 창작에 몰두하던 문학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악마의 손길로부터 영혼을 지켜내지는 못했다. "하느님은 왜 경멸과 조롱을 받도록 그를 만들었는가?"(27쪽) 이것이 골룸처럼 왜소한 몸을 지닌 데다 불구가 된 이 아나킨의 화두였다. 신체적 열등감, 궁핍, 연애의 실패, 실직 등에 대한 앙갚음을 증오로 대신하며, 마침내 그는 악의 화신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이 책은 외적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한 영혼의 갈등을 통해서 나치 발생사를 탐구한다. 역사서 이상의 '인간학적 품격'은 그 때문이다. 물론 괴벨스의 내면이 역사의 옷을 입고 책으로 출현할 수 있게 된 것은, 통독 이후 열람할 수 있게 된 8만 쪽의 그의 일기를 소화해낸 저자의 공로이다.

아울러 이 책은 단지 괴벨스의 심리 소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동 정치의 기술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 철학자 들뢰즈는 나치 독일의 정치학을 "위대한 갑각류 동물(총통)과 미친 무척추 동물(대중)을 등장시키는 수법"이라고 말한바 있다. 문제는 이 두 기괴한 동물이 서로 죽이 맞아 국가사회주의라는 환각제를 빨아대며 광란의 도가니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은 괴벨스 덕분이다. "괴벨스가 조직한 선전 집회들은 항상 청중들의 감정과 본능에 호소했다"(187쪽). 그의 연설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독재자에 대한 복종을 갈망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첨단 장비가 나오면 재빨리 활용했다. 1930년대 중반 새 발명품인 라디오를 대량보급해 어디서나 그의 연설이 울려 퍼지게 했다. 이 라디오는 이후 '괴벨스의 주둥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된다(418쪽). 물론 이때 방해거리가 되지 못하도록 언론을 '정부의 손안에 든 피아노'로 만드는 것은 필수다(414쪽). 그런데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한 인간과 유럽사를 알기 위해 1000쪽이 넘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오히려 이 책은 우리 안에 있는 파시즘의 악마를 경계하기 위한 '퇴마사의 교본'이 아닐까? 우리 주변에도 거짓말이 위기에 몰릴 때면, 민족이나 조국 등등의 단어를 환각제처럼 뿌려대며 잠자고 있는 파시즘에 의탁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없지 않으니 말이다.

서동욱<서강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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