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진기자의 설땅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주기중 <사진부기자>
기자의 직업 전선은 「사건의 현장」이다. 그 현장에서 일어나는 「한순간」을 뽑아내야하는 사진기자들은 그래서 한 장의 사진에 때로 목숨을 건다.
사진기자는 미친 듯 총을 쏘아대는 인질범에게도 억지 미소를 보내며 접근해 셔터를 눌러댄다.
등에 식은 땀을 흘리며 현장을 빠져 나와서는 한잔 술로 긴장을 풀고 보람을 노래하느게 사진기자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난 6일 하오 세브란스병원 정문 앞에서 고 이한열군 추도시위를 취재하던 서울신문 사진부의 오정식기자가 시위대 쪽에서 날아온 것으로 보이는 돌멩이에 머리를 맞고 중태에 빠진 사건은 우리에게 새삼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오기자가 취재하던 곳은 전쟁터도 아니었고, 총기 난사 인질사건의 현장도 아니었다.
진압복을 입은 젊은 전경들이 늘어서서 적도 아닌 학생들에게 최루탄을 쏘고 이에 맞서 젊은 학생들이 돌을 던지는, 오기자가 변을 당한 곳은 그런 「한국형 비극」의 무대였다.
시위 대열로부터는 외면당하고 경찰로부터는 박해를 받아가면서 「보도」라고 쓰인 완장 하나를 방패삼아 비무장으로 셔터를 눌러댈 때마다 우리는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오기자가 돌을 맞은 곳은 「폭력」으로 희생된 이군을 추모하는, 「비폭력」을 외치는 시위현장이 아니던가.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침묵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에게 목놓아 울 여유조차 주지않은 채 경찰은 최루탄을 쏘아 학생들을 자극했고 이에 맞선 돌멩이가 우박처럼 날아든 현장.
7일 하오 연대생들의 추모 가두시위에서 경찰은 한발의 최루탄도 쏘지 않았다 .학생들은 말없이 신촌역까지 시위한 뒤 탈없이 학교로 돌아왔다. 물론 충돌도 부상사도 없었다.
지금은 모두가 과격을 자제해야할 때다. 민주화가 이뤄지는 과정을 지켜봐야 할 때다. 그리고 우리 사진기자들은 그 과정 하나하나를 사진에 담아 기록해야할 때다. 전쟁터도, 총기 인질사건의 현장도 아닌 이 현장에서 우리가 안전히 셔터를 누룰 수는 없는 것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