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판밖에 길이 없다."|두김씨 후보조정 어떻게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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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29」이후 민정당이 노태우후보를 앞세워『발빠른 행마」를 하고 있는데 반해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의 관심은 김대중·김영삼 두김씨의 후보조정에 온통 쏠려 있다.
아직은 내연하는 단계지만 김대중씨의 사면·복권이 내주에라도 단행되면 그의 민주당 입당문제, 시국운영방안등의 형태로 한바탕 소리가 일어날 전망이다.
대통령후보 조정문제에 대해 상도동측이『굳이 늦출 필요가 있느냐』고 신속한 결정을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동교동측은『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즉 동교동측은 민주화조치가 명실상부하게 실현되는지, 공명정대한 헌법·선거법이 마련되는지를 지켜봐야 할 때지 지금 후보문제를 거론할 시점이 아니라는 것.
정권교체까지 여러가지 장애가 있으므로 이를 갈 감시해야 한다는 김의장의「4단계 암초론」도 그런 맥락이다.
이에반해 상도동측은『민정당이 사실상 선거체제로 들어갔으므로 우리도 빨리 후보조정도 하는 등 대응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상도동측은 여권이 직선제를 하겠다고 했으니 이를「선거혁명」으로 끌고가 정권을 교체하는게 급선무라는 것이며, 동교동측은 보다 완벽한 민주화의 실현이라는 명분하에 후보조정문제는 뒤로 돌리자는 입장으로 분석될 수 있다.
이와관련, 상도동계 한 의원은『현재 국민들의 심정은 두김씨가 경쟁을 하는체만 해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며 『앞으로 한달 넘게 머뭇거리면 양측 모두 엄청난 손상을 입을 것』이라며 「9월이전」결정을 주장하는 반면 동교동계 한 의원은 『다소 경쟁상을 보이는 것은 민정당에 대한 전략으로도 괜찮다』며 『앞으로 2, 3개월뒤 개헌안이 합의되고 공정한 선거법이 마련될 때쯤 후보문제를 논의해도 늦지 않을것』이라고 9월말쯤을 후보선출시기로 잡고 있다.
후보조정에 있어 넘어야할 한 고비는 이른바 김의장의 부출마선언을 지금 시점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것.
당사자인 김의장은 지금까지『나는 민주화에만 관심이 있고 현재로는 출마 생각이 없다』『국민운동본부가 하명하면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등 부출마선언의 연장선 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러나 측근 의원들 및 비서진들의 말은 조금 다르다.
한의원은『김의장의 불출마선언이 「문제」가 된다면 김총재가 「마음비웠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라며 『따라서 양측이 서로 말꼬리를 잡지 말고 이 문제에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한뒤 담판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부출마선언은 대국민공약인데 이를 뒤집으면 계보를 이탈하겠다』고 피력한 것으로 알려진 한 중진의원은 상당한 항의전화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많은 동교동계 인사들은『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이같은 동교동측의 움직임에 대해 상도동측은 내심 그 선언이 김의장의 발목을 잡아채는 고리역할을 했으면 하는 기대를 하면서도 내놓고 말할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상도동계 한 의원은 『불출마선언과「마음비웠다」는 얘기는 질적으로 다른것 아니냐』고 했다.
후보조정과정의 순항여부는 곧 사면·복권이 될 김의장의 민주당 입당여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김의장은 『재야인사 수용이 내문제보다 우선한다』고 선재야인당조건을 내걸어 결국80년과 같이 재야의 영입이 변수로 등장하고 있는데 80년처럼 이 문제가 타결 안돼 김의장의 입당이 안된다면 야권이 그때와 같이 또한번 소용돌이 속에 빠질 것임은 불문가지.
그러나 김의장도 △자신과 김총재가 분당을 주도했고△두김씨의 기도노선을 따르겠다는 것이 분당명분이며△동교동계가 50%나 되고 있다는 점에서 80년의 신민당과는 전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마냥 입당을 거부할 명분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김의장은 후보절충이 순조롭지 못하면 사면·복권후에도 민주당 바깥에서 연설회를 갖는 등 대중집회로 국민지지를 과시하는 방법을 쓸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일부에서는 3일 연세대에서 있었던 대학생시국대토론회에 부인 이희호여사가 나간 것도 이와 같은 전술의 일환이 아니겠느냐고 추측.
결국「국민의 요구가 그렇지 않다」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불출마선언이라는「늪」에서 빠져나오는 동시에 재야에 휘둘리고 있는 민주당을 밀어붙이는 양면작전을 구사하리라는 관측이 많다.
상도동측은 총재라는「기득권」을 최대한 활용하면서『이번이 정권교체의 절호의 기회인 만큼 어떤 계층으로부터도「기피인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이 나서야 할 것 아니냐』는 논리를 확산시켜 나간다는 속셈인듯 하다.
이와 함께 김의장이 노벨상후보로 추천되어 있어 그 쪽에 역점을 둘지 모른다는 기대도 하고 있는 기색.
쌍방이 이처럼 한쪽은 민주당울타리를 고수하고, 다른쪽은 그 바깥에서 대중집회로 나간다면 80년의 상황이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후보조정에 관해 현재까지 두사람이나 주위인사들의 언행을 종합할 때 △두사람 모두「출마생각」은 있다는 것△이번 만큼은 후보가 단일화돼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되고 따라서 조정방법이 가장 큰 문제다.
우선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경선은「모두에게 끝장」이라는 인식이 있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원로의 중재안도 가능성이 없다.
80년대 윤보선씨의 안국동중재가 결국 실패로 돌아갔었고 현실적으로 지금 두김씨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인물도 없기 때문. 일부에서는 김수환추기경 얘기도 있지만 그가 나설리 없다는게 중론.
동교동계는「범야대통령후보추진위」같은 별도의 기구에 의한 방법에 관심을 갖고 있으나 재야기구화할 가능성이 있으면 상도동측이 받기 어려울듯.
결국 당내 일치된 의견은 두사람이 무슨 수를 쓰든지 담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사람의 정치적 묵계로 후보와 당수를 나누든지, 정·부통령후보를 각각 분할하든지, 또는 이번에는 누가 대통령 후보, 다음번엔 누가 대통령후보라는 식으로 정하는 「신역할분담」방안이 그럴싸하지 않느냐는 추측도 나돌고 있다.
두김씨간의 조정문제에 우려하는 많은 사람들은 지난 83년 광복절에 나온 두김씨의「8·15공동성명」을 들어 원만한 조정에 실패할 경우 여론의 호된 비판을 면할수 없을 것으로 본다.
「워싱턴에서 김대중」「서울에서 김영삼」의 이름으로 발표된 이 공동성명에서 두사람은『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고 전제,『80년 봄, 온국민이 한결같이 열망하던 민주화의 길에서 우리는 당시 야당정치인들로서 하나로 되는데 실패함으로써 수백, 수천의 민주국민이 무참히 살상당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고 계속 국민의 수난이 연속됨은 물론 민주화의 길을 더욱 멀게 한 사태를 막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고 자책하고『우리 두사람은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하나가 되어 손잡고 우리 민족사의 지상과제를 향해 함께 나아가려 한다』고 밝혔었다.
이어 두사람은『우리들의 부족하였음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고 민주전열에 전우로 받아주기 바란다』고 말하고『우리 두사람은 오로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국민과 함께 그뜻을 받들어 민족과 민주제단에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하는 바』라고 다짐했었다.
이들은 같은 성명에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나자신을 버리고 나의 모든 것, 나의 욕망, 나의 생명까지도 던질수 있어야 한다』고 자기희생을 강조하는 발언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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