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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행 '기러기 가정부' 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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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위모(48.여)씨:2005년 4월, 관광비자로 미국에 입국해 '입주 가정부'가 됐다. 한국에서 가정부 생활을 하며 어렵게 살던 그는 같은 일을 했던 동료가 미국에서 몇 달간 입주 가정부로 일해 목돈을 벌어 귀국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무작정 한국의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다. "가진 돈을 다 털어 소개소에 사례비를 지불했어요. 그랬더니 관광비자를 받아주기에 독한 마음 먹고 아들딸 남겨두고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왔지요." 그는 현재 3대(代)가 함께 사는 가정의 집안일을 거들어 주며 월 2500달러의 보수를 받아 한국의 두 자녀에게 보내 준다.

#이모(70.여)씨:한국에서 70대 노인이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아들까지 세상을 떠 앞이 캄캄할 때 LA에 사는 친구가 그를 불렀다. 관광비자로 들어와 친구집에 머물던 그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맞벌이 한인 가정에 입주 가정부로 들어갔다. "한국에서 누가 나 같은 할머니를 쓰겠어요. 이렇게 좋은 집에서 숙식도 해결하고 다달이 1800달러씩 모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데요." 토요일 오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는 자유시간을 즐긴다.

한국의 중.노년 여성들이 입주 가정부 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몰려오고 있다. 미국의 한인 가정에 입주해 가정부 일을 하면 숙식 해결과 함께 목돈까지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의 가정부 소개업체인 가사원의 최정인 소장에 따르면 입주 가정부의 월급은 식구 수에 따라 달라진다. 부부만 있으면 1500달러를 기본으로 해 추가되는 가족 1명당 200달러가량 돈을 더 받는다. 고소득은 아니지만 아파트 월세, 식비, 교통비 등을 쓰지 않아도 돼 마음만 먹으면 돈을 고스란히 저축할 수 있다.

한국에서 온 입주 가정부들은 자녀를 다 키워 놓은 50~60대 여성이 대부분이다. 경제력 없는 여성이 처음부터 가정부 자리를 겨냥해 미국행을 택하는 사례가 많다. 친지를 방문하거나 딸의 산후조리를 돕기 위해 미국에 왔다가 남은 체류 기간(통상 3~6개월) 동안 일하기도 한다. 천사도우미직업가정부소개소의 미셸 림 소장은 "입주 가정부가 되기를 원하는 여성 중 20%는 한국에서 온 분들"이라고 말했다.

과거 입주 가정부 자리는 멕시코에서 온 젊은 여성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적은 임금에도 일을 잘하지만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 때문에 기피하는 가정이 적지 않다. 그 자리를 한국에서 온 중년 가정부들이 메우고 있다고 소개소 측은 설명했다.

LA에서 한인 가정부를 쓰는 주부 이모(36)씨는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기 힘들어 한인 가정부를 고용했는데, 한국 요리도 잘하고 말이 잘 통해 편하다"고 만족해 했다. 노아가정원 이청옥 소장은 "미국은 가정부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한국보다 좋은 편"이라며 "일부 교포들이 마치 왕처럼 군림하려고 하지만 이들을 가족처럼 대해 주는 교포가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지사=장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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