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정밀화학업계 "몸살"|1일부터 실시되는 물질특허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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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말뜻조차 생소하던 물질특허제도가 1일부터 실시에 들어갔다. 기업들로서는 설마하던것이이제 발등의 불로 현실화된 것이다.
물질특허제도란 어떤 물질을 만드는 화학적인 제조방법만이 아니라 물질 자체에 대해 특허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제조방법만 다르다고 인정되면 그 결과로 나온 물질이 기존의 것과 동일해도 괜찮았지만 앞으로는 동일물질의 경우는 생산방법·용도·출처·분량의 다소에 관계없이 특허권자의 승인을 받아야만 사용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자체개발 경험이나 능력이 크게 부족한 국내업체들은 신물질이용때 기술사용료를 지불해야하는 부담이 뒤따르게 됐다.
또 특허기간도 지금까지는 공고일로부터 12년으로 하되 출원일로부터 15년을 초과하지 않도록 했던것이 15년으로 연장되며 검사·실험기간등올 감안하는 기간회복제도가 실시돼 특허권은 최고 20년까지 늘어날 수 있게됐다.

<미국 3백여건 출원>
가장 급해진 쪽은 제약업계. 그동안은 외국회사들이 개발한 신약들을 적당히 제법만 바꿔가며 특허료 부담없이 재미를 보아왔었으나 물질특허권을 인정키로 함에 따라 이제는 이것이 전혀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런가하면 특허권 보호소식이 전해지자 외국유명기업들이 대거 한국시장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특허출원 대상국중에서 당장 세계랭킹20위권으로 부상할 것으로 관계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불러올 외풍 대비에 정부나 기업들은 대책을 마련하느라 애쓰고 있다. 특히 무풍지대였던 제약회사들의 경우 최근 1년사이에 23개의 기업단위 연구소 간판을 새로 내다걸 정도로 부산한 움직임이다.
실제 물질특허권이 발표되기 시작하는 시점은 88년초께부터가 될것으로 특허청은 예상하고 있다. 미국과의 쌍무협정에 따라 미국이 이미 제법특허로 출원해 놓고 있던 3백여건에 대해서 예외적으로 물질특허권을 인정해주기로 함에 따라 이것들의 특허권효력이 당장 발생토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신약의 경우 약품값의 절반가량이 개발비일 정도로 연구·개발에 많은 돈이 든다. 우리나라제약업계의 경우 연구개발비용의 전체매출액에 대한 비율은 평균0.2%수준에 불과하니 그 사정을 알만하다.
효력불명의 각종 드링크류로 돈을 벌면서 제약업계의 생명인 연구개발투자에는 이처럼 인색했던 것이다. 이것을 90년대초에는 3%수준으로까지 올리겠다는게 당면목표다. 정부쪽에서도 과기처산하의 화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신물질개발에 필요한 활성시설·특성시설들을 갖출 계획이다.
사실 신물질개발은 여간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게 아니다. 우선 수많은 화학합성 과정을 통해 2백∼1천개의 「후보 신물질」을 만들어내야 그중에서 1∼2개정도의 진짜 신물질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고 비싼 작업을 거쳐야 한다.

<한개 개발 7천만불>
우선 합성한 신물질이 정말 약핵가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활성검사를 거쳐야 하고 약핵가 있더라도 그에 따른 부작용이나 독성은 없는지를 따지는 독성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사람대신 수많은 말과 개등이 실험용으로 죽어야 하므로 외국에서는 독성실험용 동물을 별도로 사육해서 돈을 버는 전문회사까지 있다.
화학연구소의 사업계획에 따르면 금년안에 살충제와 제초제쪽에서 2천개의 후보 신물질을, 항생제와 항암제쪽에서 2백50개의 후보 신물질을 개발해 잘하면 내년중에 2개정도의 신약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돈으로 따지면 신물질 하나를 개발해내는데 3천만∼7천만달러가 들어간다.
이런 상황이니 물질특허 제도의 실시에 따라 국내기업들이 보호받읕 특허권이란 가뭄에 콩나기식이고 결국은 외국특허권의 일방적인 보호조치에만 초점이 맞춰질 수 밖에 없다.
1일부터 신규 출원되는 특허권은 심사·등록·공고등의 절차를 거치는데 3년정도가 소요되므로 90년이후부터는 신물질의 특허권 인정이 러시를 이룰 전망이다.
미국쪽뿐만 아니라 서독·스위스·프랑스등의 유럽기업들로부터의 외풍도 만만치 않다.
정밀화학분야에서는 이들이 오히려 미국기업들보다 한수 위인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정부가 미국기업에만 예외적으로 3백건을 소급해서 물질특허권을 인정해주기로 한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미국과 같은 기준을 적용받는다면 자기네들은 무려 5백건에 달하는 신물질의 특허권을 보장받아야 하는데도 왜 미국에만 편파적으로 특혜를 주느냐는 것이다.
어쨌든 물질특허제도 실시를 계기로 의약·농약·염료등 국내정밀화학업계는 한차례 회오리바람이 불가피하게 됐다. 막대한 자금이 뒷받침되어야할 연구개발투자 여부가 기존 업계판도를 재편시킬 중요변수로 등장하게 된데다 외국 특허권들의 대거 진출로 인해 이들과의 새로운 기술제휴 회사들이 적지않게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물질특허보호문제가 제기되면서 물질특허뿐만 아니라 공업소유권까지 포함한 특허권제도전반에 걸쳐 관심과 경각심이 환기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특허청자료에 의하면 가전 3사의 연간 특허료부담이 4백억∼5백억달러 수준에 달하며 이같은 숫자는 기업체산성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전사서 5백억불>
특히 VTR수출의 경우 일본·미국등의 특허권업체에 대해 대당 12달러 안팎의 특허료를 지급하고 있는데다, 더구나 대부분이 엔화표시로 계약된 것이라 연말에 가서는 대당 특허료부담이 16달러수준으로 높아진다고 차수명특허청장은 지적하고 있다.
특히 우리 기업들이 점차 기술집약분야로 변신해감에 따라 외국의 유수기업이 자기네들의 경쟁자로 부상하는것을 미리 막기 위해 공업소유권의 특허출원이 최근 들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업계뿐만 아니라 플라마톤, 커민스 엔진등 기계분야 유명업체들의 특허출원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반도체분야에서는 일본의 히타치, 후지쓰, 도시바등의 특허출원이 집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분야의 경우 외국기업의 특허출원건수가 지난 3월말 현재 국내기업의 19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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