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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날 위해 만든 곡, 국민 위로하게 될 줄이야…새해도 희망 노래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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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무래도 근심이 많은 한 해였나 보다. 연초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수록곡으로 시작해 연말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걱정말아요 그대’를 달고 살았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진통제를 먹듯 고통이 느껴질 때마다 노래를 한 숟갈씩 떠먹었고, 2004년 발표(전인권 4집)된 이 노래는 2016년 각종 연말 시상식을 장식했다. 가수 전인권(63)은 SBS 연예대상에서는 유재석·신동엽 등 대상 후보 5인과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했고, KBS 가요대축제에서는 샤이니 종현을 비롯 전 출연진과 함께 무대에 섰다. 그렇게 그는 다시 한번 노래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아픈 기억들 모두 가슴 깊이 묻어버리자”고.

가수 전인권의 선글라스 위로 건반 위에 올려놓은 손이 비친다. 그는 “많은 후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 즐거운 연말이었다”며 “다만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사람이 있으면 통기타에 목소리를 얹는 사람도 나오고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가수 전인권의 선글라스 위로 건반 위에 올려놓은 손이 비친다. 그는 “많은 후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 즐거운 연말이었다”며 “다만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사람이 있으면 통기타에 목소리를 얹는 사람도 나오고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연말 서울 홍대 합주실에서 전인권 밴드와 함께 연습이 한창인 그를 만났다. 그는 ‘국민 위로송’을 두고 “이 노래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불려질 줄은 몰랐다”며 “많은 사랑을 받고 노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되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걱정말아요 그대’는 이적이 부른 드라마 OST 버전으로 사랑받기 전부터, 2012년 컴백 이후 들국화 콘서트의 피날레를 장식해왔다. 이제는 그와 최성원을 제외하고는 주찬권 등 멤버들이 유명을 달리한 상황. 전성기의 포효대신 읊조리는 노래 가사가 더욱 울컥하다.

처음엔 어떻게 쓰게 됐나.
“마누라와 이혼을 하니까 내가 없어졌다. 당시 6개월간 정신병원을 다니다 졸업하고 집에 와서 가사를 썼다.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방이 어두침침했는데 내가 다시 생긴 것 같더라.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는 정말 내 얘기니까. 새로운 걸 보고 싶은 마음에 쓰고 나니 거짓말같이 환해졌다.”
지난해 처음 촛불집회에 참석했을 때(11월 19일 4차 집회) 선곡이 화제였다.
“모든 선곡은 직접 했다. ‘애국가’는 끝까지 비밀로 했던 깜짝 선곡인데 처절하게 한번 불러보고 싶었다. 사이먼앤가펑클이 센트럴파크에 모인 50만 명 앞에서 공연했는데 나는 100만 명과 함께 한 것 아닌가.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노래하다니 울컥 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연출인지 사고인지 모르겠는데 무대조명이 꺼진 적이 있었다. 어느 여학생 하나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게 우리 국민의 힘이구나 싶었다. 두 사람만 붙여도 ‘사람 인(人)’자 처럼 힘이 되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뭉쳐서 결국 해낸 게 아닌가.”

전인권은 지난 31일 10차 촛불집회에는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신윤철과 함께 무대에 올라 “아름다운 강산이 촛불과 함께 승화되는 날로 기억하자”며 한해를 마무리했다. 박사모 등 보수단체가 탄핵 반대집회에서 신중현 작곡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자 “박정희 정부 때 금지된 곡을 유래도 모르면서 부르지 말라”고 반박했던 신대철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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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일을 싸움처럼 몰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절대 그런 뜻이 아니다”라며 “군사독재 시절 계속 ‘새마을노래’ 같은 곡을 만들라고 핍박받던 신중현 선생이 끝까지 버티며 만든 아름다운 노래”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걱정말아요 그대’가 수록된 4집 제목이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이라며 “록의 기본 정신이 사랑과 평화와 자연인 만큼 우리끼리 싸워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말이 많다.
“표현의 자유는 기본권이다. 국민에게 말할 권리와 자유를 돌려줘야 창의력이 생겨난다. 록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근거(근본)가 없다고 말하는데 근거가 없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미술 같은 작품이 있다. 정부가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대로 빠져들어가면 작품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우리 맘대로 괴로워하고 힘들어해야 새로운 출구가 열린다.”
문화라는 단어가 오염된 것 같다.
“문화부는 국민의 즐거움을 위해서 만들어진 곳인데, 국민을 위하는 게 아니라 권력자의 힘을 향해 움직였다. 멋있는 나라가 되야 하는데 청문회를 보면서도 답답했다. 당신 뭐 때문에 왔느냐고 하면 다들 대답을 못하지 않냐. 국민을 위해서 무슨 일을 했냐고 묻고 싶었다.”

그는 3월 4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예정된 공연에 맞춰 새 앨범을 선보일 계획이다. 밴드와 함께 드럼으로 리듬을 만드는 등 또다른 도전에 나선다. 힘든 한 해를 보낸 이들에게 4집 수록곡 ‘늦지 않았습니다’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역시 늦었더라도 희망을 노래하는 위로곡이다. “시작해 다시 시작해 늦지 않았습니다… 늙어 죽을때까지 해는 비춰줍니다”

‘걱정말아요 그대’ 전인권
사이먼앤가펑클 공연 때 50만 명
난 100만 명과 애국가 부르니 울컥
록의 기본 정신은 사랑과 평화
우리끼리는 절대 싸우지 말아야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해선 안돼
내 맘대로 괴로워해야 작품 나와

글=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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