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父子有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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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1992년 종교를 묻자 '유교'라고 답했다. 고인은 그 무렵 선거운동 차원에서 유권자들에게 서산농장을 보여줬다. 여의도의 48배에 이르는 방대한 농지, 끝없는 지평선 가운데 우뚝 솟은 동상이 인상적이었다.

고인이 가장 존경한다는 아버지의 동상이었다. 가난한 농사꾼이었던 아버지가 논을 보며 한(恨)을 풀 것이라고 했다. 6년 뒤 소떼를 몰고 방북한 것도 개인적으로는 "가출 당시 들고나왔던 아버지의 소 판 돈"을 갚는다는 부채의식의 소산이었다.

고인은 효(孝)를 무척 강조했다. 유교의 기본가치인 효는 '자식의 어버지에 대한 존경'이며 '가정의 화목'을 가져온다고 확신했다. 그만큼 자식에게 엄했다. 대선 후보 시절엔 매일 새벽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서울 청운동 자택으로 불러 출근길에 도열시켰다.

고인이 고향에 남다른 애착을 보인 이면에도 유교적인 뿌리찾기의 영향이 적지 않다. 98년 역사적 방북의 소감을 묻자 그는 "우리 고향에 가게 돼 기쁘다"고 했다.

고향은 금강산 인근 강원도 통천이다. 그래서 "금강산 개발은 내 인생의 마지막 과제"라고 했다. 금강산 계곡 호박돌로 "집을 짓고 살고 싶다"고도 했다. 명예회장 일행은 금강산 관광 첫머리에 삼선암에 올라 조상신께 제례를 올렸다.

명예회장이 총애했던 아들로 몽헌.몽준씨가 꼽힌다. 몽헌씨에겐 사업체를, 몽준씨에겐 대권꿈을 유산으로 남겼다고들 얘기한다. 몽헌 회장이 남긴 유서 가운데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라는 대목에선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부채의식이 확연하다.

그 유언을 받은 김윤규 사장은 몽헌 회장의 투신과 관련, "회장님이 다 막으려 가셨다"고 말했다. 자살은 금강산 관광으로 상징되는 아버지의 유업을 지키려는 최후의 수단이란 의미로 느껴진다. 매장을 중시하는 유교적 가풍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화장해 뼛가루를 금강산에 뿌려달라고 부탁한 심경도 마찬가지로 이해된다.

안타깝지만 몽헌 회장의 효심이 대북사업을 둘러싼 정치적 흑막을 덮어두는 데 일정 부분 성공할지는 몰라도 사업 자체의 강력 추진을 담보하지는 못할 듯하다. 정치판에 부자유친(父子有親)이란 처음부터 없었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