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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지기의 새해 소망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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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 스님

원영 스님

도반 스님 절에 노스님 49재가 있어 다녀왔다. 생각보다 많은 스님들이 오셔서 아주 분주한 절 풍경이었다. 도반 스님은 이리저리 정신이 없고, 민첩하지 못한 나는 눈치껏 심부름과 설거지로 한 구역을 때웠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건만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니 벌써 해 질 녘이다. 다른 스님들에 비해 평소 몸 쓰는 일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라 그런지, 숙소로 돌아온 이후에도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그리고 얼마 후, 도반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삶과 믿음

“살다 보니 도움의 손길도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한테서 찾아오는 것 같아. 스님이 도와주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거든. 그냥 난 와주기만 해도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종일 도와주기까지 하다니 너무 고마워. 우리가 20년 지기인 게 맞긴 맞나봐. 하하.”

그렇다. 우린 머리 깎고 만나 지금껏 함께 공부하고, 함께 웃고, 함께 꾸중 들으며 20여년을 지냈다. 그렇다고 내내 붙어다닌 것도 아니다. 더러는 1년 넘게 못 본 적도 있고,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인정하기 싫어 토라져 있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만나면 반갑고, 꽤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도 어제 만난 듯 편안하다. 왜냐고? 우린 20년 지기니까.

20년 지기라는 단어에 문득 나는 우리 사회, 내 이웃들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떠올렸다. 특히 주말마다 열리는 촛불집회를 보며 나는 이들이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백년지기가 아닐까’ 싶었다. 어린이 청소년에서부터 연세 드신 어르신까지, 그 자리는 지난 한 세기의 업보를 모두 공유하고 있는 동업중생(同業衆生)의 모임 같았다.

지난 100년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다. 처절한 동족상잔의 전쟁도 치렀고, 남녀차별과 계층별 갈등, 세대 간 불화는 아직도 여전하다. 그렇기에 이제 광장은 특정인에 대한 분노만 얘기하지 않는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바람직한 길에 대해 논하는 곳이 되었다. 그러한 정서가 어느덧 분노를 넘어 축제를 이뤘고, 새로운 100년을 함께 열어가는 희망의 합창이 되었다.

우리 헌법 전문(前文)에 보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
할 것을 다짐하면서’ 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글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향후 100년을 함께 열어갈 ‘백년지기’이다.

새해가 밝았다. 1월 1일이다. 세상도 나도 조금씩이지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까워 오듯,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이상을 따라가며 다들 소중한 걸음을 내딛는 듯 보인다. 그런 한 생각, 한 걸음이 새해를 시작하는 멋진 자산이 되리라. 그러니 우리 모두 그간의 혼란과 분노를 넘어 올해는 더 나은 사회, 더 멋진 인생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우리 서로 ‘백년지기’라는 마음으로!

원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