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스파이 소굴” 러 외교관 휴양시설 2곳도 폐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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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의 해킹에 대해 35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한 것은 냉전 이후 처음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기에는 수십 명의 외교관을 맞추방했으나 냉전이 끝난 1991년 이후에는 스파이 혐의 등으로 상대국 외교관을 수명 추방한 정도에 그쳤다. CNN방송은 “이번 조치는 과거 수십 년 사이에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강력한 내용”이라며 “해킹에 관여한 러시아 정보기관 고위 관리들의 이름을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라고 보도했다.

80년대부터 비밀 공작 장소 의혹
2년 전 북 해킹 제재보다 강도 세

미국의 보복은 2년 전 북한의 소니픽처스 해킹 당시 대북제재보다 강도가 더 세다. 오바마는 2015년 1월 소니픽처스 해킹에 대응해 행정명령을 통해 북한 정찰총국과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조선단군무역회사 등 단체 3곳과 그와 관련된 개인 10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들 개인과 단체는 미국 금융시스템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고 미국 개인과의 거래가 금지됐다. 하지만 북한은 애당초 미국과 외교 관계가 없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입국 금지나 금융시스템 이용 금지 등은 실질적인 제재 효과를 거두기 힘들었다. 당시 대북제재가 상징적 조치였다면 이번 대러제재에는 외교관 추방, 러시아 시설 폐쇄 등 실질적 조치가 포함됐다. 뉴욕타임스는 “2년 전 대북제재보다 광범위하고 강도가 세다”고 평가했다.

미 국무부는 뉴욕과 메릴랜드에 있는 러시아 휴게시설 2곳도 폐쇄했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 내 러시아 외교관들의 고급 휴양지로 알려진 곳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시설에 대해 “정보 관련 목적으로 이용됐다”고 설명했다. 미 정부는 29일 폐쇄 방침을 발표하면서 뉴욕·메릴랜드주에 위치한 이 시설들이 러시아 정보요원들이 미 당국의 눈을 피해 접선하는 ‘스파이 소굴(spy nests)’이었다고 묘사했다. 2곳은 오바마의 폐쇄 명령에 따라 29일 정오부터 러시아 정부의 접근이 금지됐다.

메릴랜드 시설은 워싱턴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러시아는 72년 미국 내 자국 외교관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이곳을 구매했다. 메릴랜드 시설에서 러시아가 비밀 공작을 벌인다는 의혹은 80년대부터 제기됐다. WP는 87년 이곳에 기자를 보내 취재를 시도했지만 접근이 차단돼 내부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뉴욕 시설에 대해선 54년 당시 소련 정부가 구매한 롱아일랜드주 부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만 공개됐다. 메릴랜드 시설보다 훨씬 작고 인근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일하는 러시아 외교관이 자주 이용한다고 WP는 전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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