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앞두고 벌어진 미국-러시아의 긴박했던 외교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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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러시아 사이 긴박한 외교 공방이 시작된건 현지시간 29일 오후. 먼저 공을 던진 것은 워싱턴이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 백악관(왼쪽)과 러시아 크렘린궁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 백악관(왼쪽)과 러시아 크렘린궁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대러 초강경 제재 방침을 밝힌 것이다. 러시아의 '미 대선개입 해킹' 사건에 대한 보복이라는게 이유였다.
이에 따라 미 정부는 현지시간 29일, 자국내 러시아 외교관 35명이 '외교관·관료를 가장한 스파이'라며 이들을 '기피 인물'로 지정했다. 기피 인물로 지정된 이들은 72시간 내 가족과 함께 미국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추방령'을 내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미국 내 러시아 정부시설 2곳을 폐쇄하는 한편 러시아 관계자들의 접근을 막았다.

이어 다음날 오전, 모스크바에서 첫 반응이 나왔고 '맞불 제재'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미국과 똑같이 대응하는 제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CNN 등 일부 외신들은 러시아가 모스크바 내 미국 국제학교를 폐쇄할 수도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라브로프 장관은 자국 내 미국 외교관 35명을 추방하고, 모스크바에 위치한 미국 정부시설 2곳을 폐쇄하는 등 맞 제재에 나설 것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강력 건의했다. 또, 미국이 제기한 '러시아 미 대선 개입 의혹'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상황이 정리된건 30일 오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였다.
푸틴 대통령이 "문제를 만들지 않겠다"며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할 때까지 지켜볼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아무도 내보내지 않겠다. 그들의 가족과 자녀들이 평소 새해 연휴가 되면 찾아가는 장소(제재 대상으로 거론됐던 미국 외교관들의 별장)도 폐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는 이처럼 "무책임한 외교행동"을 추구하지 않는다며 우회적으로 오바마 행정부를 비판했다.

러시아의 이같은 반응을 놓고 전문가들은 "푸틴이 임기말 오바마 행정부를 열외시켰다"고 분석했다. 성향이 다른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임기말에 벌인 일들에 대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는게 이유다. 러시아 전문가 질 도허티는 "이같은 행보로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지난 일은 다 덮어두고 이제 함께 앞으로 나아갑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며 "푸틴의 매우 전통적인 정치술수"였다고 평가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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