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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규제프리존 1년 허송세월…동력 사그라드는 신산업 육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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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구시는 자율주행차 분야를 전략산업으로 선정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람이 운전하지 않아도 자동차가 도로를 다닐 수 있는 자율주행차 시험장을 만들고 자동차 부품산업도 육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대구시는 일반도로에도 자율주행차 임시운행 허가를 시장권한으로 내도록 규제를 철폐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해 왔다. 정재로 대구시 미래형자동차과장은 “이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고용 유발 효과만 1만4115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규제프리존 특별법이 마련되지 않아 이 사업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드론·자율주행차·태양광·수소전지
규제 푸는 특별법안 국회서 낮잠
14개 시·도 지역 전략산업 차질
야당 반대에 탄핵정국 겹쳐 해 넘겨

규제를 풀어 지역 전략산업을 육성하겠다며 박근혜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규제프리존(free zone)’ 정책이 1년간 허송세월하다 또 해를 넘기게 됐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국회의 관심에서 멀어진 데다 시민단체 등이 “일부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정책”이라고 반대하면서 관련 법안은 제대로 심의조차 안 됐다. 결국 정부는 물론 국회도 국민과의 약속을 외면한 꼴이 됐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16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2016 경제정책방향’의 핵심 사업으로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광역 시·도에 ‘규제프리존’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14개 시·도에 각 2개(세종시 1개)의 대표 미래성장동력 산업을 키우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규제프리존은 현행 제도 안에서는 시험이나 실증이 어려운 신기술·시제품을 직접 시험하고 만들어볼 수 있게 허용하는 규제 예외 지역이다.

이들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규제프리존 특별법안’이 지난 3월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는 지난 5월까지 입법을 마치고 맞춤형 세제·재정지원 정책도 발표하기로 했었다. 3당 원내수석부대표들이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날인 5월 19일 처리하자고 합의까지 했다. 하지만 4월 13일 20대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이 갑자기 반대하는 바람에 보류돼 자동 폐기됐다. 이후 20대 국회 개원 첫날인 5월 30일 제1호 법안으로 다시 제출됐다. 20대 국회에서는 재검토가 필요한 ‘박근혜 경제활성화법안’에 규제프리존 특별법을 포함하면서 논의가 지연됐다. 지난 8월 10일에는 시·도지사들이 간담회를 열고 국회에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기도 했다.

최순실 사태 이후 시민단체와 야권은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박근혜-최순실-전경련’의 합작품으로 일부 재벌에 특혜를 주기 위한 법”이라며 다시 낙인을 찍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21일 상임위원회를 열고 규제프리존 특별법안을 심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날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활동 등을 이유로 안건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내년에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등 조기 대선 정국과 겹치면 특별법 제정이 동력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 때문인지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쟁점이 없는 법안이다. 통과시켜 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국회 기재위원장인 조경태 국회의원 측은 “내년 초 임시국회에서라도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규제프리존을 기대하고 전략사업을 준비했던 각 시·도는 답답해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고 청년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규제프리존 마련을 통한 정부 재정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탄소·농생명 산업을 전략산업으로 택한 전북은 국가 식품클러스터·민간 육종 연구단지를 활용해 농업벨트를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 최병관 전북도 기획관리 실장은 “이 같은 사업으로 향후 일자리 1000개 이상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규제프리존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가능한 사업”이라고 했다.

김정윤 강원도 지역협력 담당은 “대관령 일대 백두대간 보호지역의 행위제한 완화 등이 이뤄져야 관광산업 등이 활성화할 수 있다”고 했다. 송석두 대전시 행정부시장은 “규제프리존 사업은 수도권에 비해 열악한 나머지 지역의 경제를 살려보려는 의도로 출발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는 경제·민생 관련 법안이라도 정치권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전·전주·대구=김방현·김준희·김정석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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